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이고 24년 발행된 1만엔 신권의 얼굴이자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가 칭송했다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를 몰랐다. 저자는 그를 "주판을 든 무사" 라고 칭했다. 500개의 기업과 600개의 단체를 세웠으며 노별평화상 후보에도 여러차례 올랐던 그는 청빈한 부를 강조했고.경영자의 본질을 책임감 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통용된 제일은행 1엔권의 모델로 우리에게는 국권침탈의 상징이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그가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 만큼은 인정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조선보다 더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농민이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역사의 격변기에 상인과 지식인으로써 무사의 교육을 다 받았고 파리만국박람회에 일본 대표단으로 가서 선진문물도 직접 보게 된다. 수에즈운하를 보고 주식회사 제도인 서양의 경영체계를 배우고 서구의 진보된 기술과 산업화된 사회구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머리와 옷 스타일도 서양식으로 바꾸며 신 문물을 열심히 배웠다. 유럽투어를 떠났을 때, 벨기에 국왕이 일본 사절단에게 자국의 철강 영업을 하는 것도 상인을 천대하는 일본인에게는 인상적인 일이었다. 그 여행중에 시부사와는 주식에도 투자해 돈을 벌었는데 그 경험으로 후에 도쿄 주식거래소도 만든다. 일본으로 돌아온 부사와는 정부에서 도량형 기준제정, 우편제도. 화폐제도. 달력. 철도 부설. 교육기관 설치. 의료사업 등등 일본 근대화에 필요한 많은 일을 했다. 정계를 떠난 후에는 더 많은 일을 한다.제일국립은행, 제지사업, 철도.가스, 호텔, 맥주, 제당 등 시부사와 없이 살 수 없을 만큼 일본에 많은 기업을 세웠다.당시 그의 영향력이라면 독점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그런 점을 몹시 경계했다. 그의 일대기를 보다보면 시대가 급변하는 시기임에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능력이 출중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는 "절대 역경은 없다"라고 말한 사람답게 힘든 일도 헤처나가며 자신만의 철학으로 기업을 운용했다. 그리고 단순히 기업만 세운 게 아니라 일본 근대화에 꼭 필요한 상업교육. 여성교육. 일본적십자. 노동쟁의기관 같은 사회공헌기관도 600 여개나 세웠다. 우리도 이 시기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부사와 같은 사람이 있어 근대화가 빨리 된 일본에게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가 있어 더 뼈저리게 느껴진다. 있었지만 당시의 위정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걸까? 인생은 타이밍이라는데 국가의 운명도 적절한 시기에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