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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평점 :
집이라 하면 일단, 나의 모든 활동 영역이 있는 곳, 마음과 몸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나만의 공간 등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곳을 여행하고 와도 '역시 집이 최고구나'라고 할 만큼 편안하게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집이다.
나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의 제목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어서 다소 당황도 했다. 각 장마다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풀어내고 있는데, 뭐랄까, 마을이 산들로 둘러싸여 온전한 태양을 받지 못하는 지역인 데다,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기도 하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장소인 작은 마을이다.
이곳엔 주인공이 신비스럽게 생각하는 마르타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이 지역의 역사와 인물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독일 정착민에 대한 전후 이야기, 인물들의 꿈,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 등 많은 것을 엮어 보여준다.
다소 신비롭고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나이 든 여인이 있고, 술에 취하면 때리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병든 가족이 있고, 결국 아들조차 바닥으로 내몰리기까지. 꿈을 통해 과정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고, 여성성의 비밀을 탐구하는 사람이 있고,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스럽지만 놓지 못한 채 삶을 지탱하고 있는 교사가 있고, 한때는 행복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삶을 사는 아이 없는 부부가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성녀의 이야기가 있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기록한 수도사가 있다. 뭐랄까, 이야기의 폭이 너무 넓다 보니 전체적이 분위기를 느끼고 따라집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에게 집은 방과 가구로 가득 찬 네 개의 벽을 가진 공간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들이 살고 죽는 곳,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거나 절망에 빠지게 되는 공간이다.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을 꾸는 장소로서의 집, 그들이 꿈꾸고 그리워하는 집은 바로 그런 곳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꿈속에서 가능하다.]
소설은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자신을 꿈을 기록하고 분석하며 인터넷에 기록한 꿈과 비교한다. 꿈은 그녀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한다. 어떤 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죽은 유령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환상, 환영을 삶 그 자체로 여긴다.
광산 사고로 죽다 살아난 남자는 예언자가 되었다. 별점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하는 법을 배웠으며, 유명한 영적 주의자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세계의 종말을 예측한다.
["홍수도 없고, 불의 비도 없고, 오시비엥침도 없고, 혜성도 없다. 하느님이 누구든, 하느님이 버리고 떠난 세상은 이렇게 보일 것이다. 집은 버려지고. 모든 것이 우주 먼지로 덮이고, 탁한 공기와 고요함에 젖는다."]
사실 읽다 보면 여기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나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하는데 나의 이해의 폭이 좁아서인지 잘 모르겠다. 혹 여기 소설 속 사람들도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 마지막으로 꿈을 꾸는 장소를 집이라 했듯이 아마도 꿈이란 모티브로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책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쉬이 읽히지 않았다.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상상력에 나의 이해력이 따라가기엔 벅찼다고나 할까. 환상과 현실, 인물들의 꿈, 비현실적인 장소, 주민들의 역사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결합하여 보여지는 방대한 상상력이 낳은 작품 <낮의 집, 밤의 집>.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한 번으론 부족한 작품이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이란 걸 책을 덮으며 느꼈다.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