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화나무 아래]

'나는 매일 소 한 마리를 해체하는 사람이다. 소위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생략).

정육 칼이 든 가방을 들고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찾아가 협박? 할 만큼 당찼던 그녀.

비록 가게에 돌아와서는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무서웠던 그녀였다. 이런 할머니의 밑에서 자란 손자여서 그럴까.

연명치료를 하지 말자는 가족들의 결정에도 손자 승훈이는 결사반대다. 기적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냥 살아만이라도 계시길 바랄 뿐이다.



내가 당사자(할머니) 라면 연명을 바라지 않겠지만(지금의 마음으론), 또 내가 승훈이라면 나도 반대할 것 같다.

그만큼 승훈이에겐 엄마보다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덜 후회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걸까요?"

42p

그럼 나는?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을 날을 향해 걸어가고만 있는 지금의 나는 의미가 있나.

42p



[오기]

며칠 전 <악플러 수용소>를 읽었는데... 여기 역시 악플러들이 존재한다.

암 같은 존재 악플러들. 조용히 숨어 있다 기막힌 타이밍에 덤벼드는 그들.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같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79p) 말하는 초아.

초아의 소설 출간이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타이밍과 적절했다는 것은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제자에게 그렇게 막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일까.

왜 비슷하면 일단 내 얘기가 아닐까? 란 생각만 하는 것일까.

내 기분은 상처고 남의 상처는 그냥 지나가는 일이란 말인가.

어찌 됐든 악플은 세상 못난? 사람만이 하는 짓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가출]

올해 나이 일흔둘. 아버지가 가출했다. 편지 한 장 달랑 남겨 놓은 채. 치매나 정신 질환도 없다.

아버지의 가출로 자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식들만 올 때도 있고 며느리와 손주도 같이 올 때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지만 정작 뾰족한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발 벗고 아버지를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모이면서 오히려 돈독해지는 가족.

대체 아버지는 왜 가출을 하신 것일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 것일까?

그러다 어느 날부터 딸이 준 카드 명세서가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어쩌면 아버지는 일부러 딸의 카드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뜻으로...



[미스 김은 알고 있다]

미스 김은 그러니까, 직함도, 부서도, 딱히 전담하는 업무도, 클라이언트도 없다. 정해진 일이 없는 대신 회사의 모든 일을 했다.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조율하고 진행했기에 그만큼 회사는 순조로웠다. 그래서 미스 김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버렸다. 그렇다고 승진을 시켜주는 것도 연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녀에게 돌아온 건...

마지막 미스 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왜? 그녀는 복수를 한 것일까?

그녀의 복수는 타당했다!!!



"사람 손이 왜 두 갠 줄 알아? 다른 건 다 놓쳐도 정신줄이랑 밥줄은 양손으로 꼭 붙들고 살라는 뜻이야."

124p



[현남 오빠에게]

처음엔 좋은 남잔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이런 개 또라의~

그녀의 의견 따윈 안중에도 없고 자기 뜻대로만 하는 남자.

사랑을 빙자한 구속. 인간으로서 그녀를 대한 게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그녀를 길들인 남자.

그녀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남자.

정말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살면 결국엔 누구 하나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까지 들게 한 남자다.

꽃 같은 청춘을 이런 남자와 함께한 그녀가 안쓰러웠지만 이제라도 그를 벗어날 수 있다는 거에 안도와 기쁨이 일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외침! 너무 시원했다.

무엇보다 저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서른 살의 오빠가 스물다섯인 저에게 꺾였다니. 서른이 된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네요.

178p



[오로라의 밤]

쉰일곱의 그녀. 그녀는 선생님이다.

하지만 예쁜 손주가 있는 할머니이기도 하다. 남들은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준다더라, 시어머니가 봐준다더라 하는 딸의 푸념도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린다. 어느 할머니가 손주가 안 이쁘겠냐마는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더 늙기 전에 계획한 버킷리스트,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나 역시 늙어도 손주를 안 봐준다 못 박아놨다(그때가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

이 나이 되도록 가족에게 헌신하고 양보했으면 노후는 내 삶을 살 권리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녀의 생각과 삶에 응원이 더해졌다. 그렇게 그녀는 시어머니와 오로라를 보러 간다. 남편을 먼저 보낸 그녀는 시어머니와 둘이 사는데 둘의 알콩달콩스러운 모습이 여느 고부지간의 모습과는 달라서 참 보기 좋았다. 뭐랄까, 한편으론 참 귀엽게도 느껴졌달까.

오로라를 보면 소원을 빈다던 그녀의 소원은???

아놔~소원이 이런 것일 줄이야~순간 웃음이 터졌고 그녀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저런 얘길 한 적이 있는데~ㅎㅎㅎ

제 엄마도 아닌 나에게 어머니, 어머니, 하며 예의 바르게, 한편으로는 어린애 달래듯 말했다. 내 딸은 내게 이렇게 다정한가, 나는 내 엄마에게 이렇게 다정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게 만드는 말투였다.

213p

"아무렇지 않게 너무 잘 살아져서 서운해. 나는 요즘 너랑 이것저것 해 먹는 것도 다 맛있고, 평생학습관에서 보드게임 배우는 것도 시니어 영어 회화 배우는 것도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 효경아, 나는 남편 없이는 살아도 아들 없이는 못 살 줄 알았다."

226p

"아니, 너 대학원 다닌다고 싫어하고만 있었던 거."

231p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준비하는 것, 완전히 절망해 버리지 않는 것, 실낱같은 운이 따라왔을 때 인정하고 감사하고 모두 내 노력인 듯 포장하지 않는 것.

250p



[여자아이는 자라서]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주하 엄마.

"남자애들이 일부러, 그러니까, 성적인 의미를 담아서 그런 게 맞아? 그냥 장난친 게 아니고? 남자애들은 원래 생각이 없어.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영웅심에 그런 걸 수도 있어."

주하 엄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을 때 나 역시 놀랐다. 상담소를 운영한 사람 맞아?

어찌 됐든 남학생들이 성희롱을 했는데 성적인 의미를 따지는 모습이란, 딸 가진 엄마조차 이런 반응이니 남자들의 반성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성적인 의미를 담든 담지 않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행동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인식시켜 줘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지금도 꾸준히 학교든 직장에서든 일어나고 있는 성희롱.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고 부모들의 교육 또한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며 학교 역시 제대로 된 체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엄마도 똑같네."

"아니! 엄마 똑같지 않아! 너 엄마가 뭘 보고 어떻게 자랐는지 몰라? 엄마 너만 할 때부터 성교육 캠프 다니던 사람이야. 대학 때 책 모임 만든 얘기 들었지?"

"그랬겠지, 무려 20년 전에.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남자 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해해 줘야 한다,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다, 그러는 사람이 됐어. 여자애들이 성적 떨어뜨리려고 남자애 꼬신다, 그런 한심한 소리 나 하는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293p



[첫사랑]

초등 4학년인 승민과 서연.

어느 날 승민이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한다.

"우리, 사귈까?"

아~귀여워~ㅎㅎ

그렇게 승민과 서연은 사귀게 되지만 코로나 때문에 점점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서연은 승민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코로나 때문에 잘 만나지도 못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서연이가 헤어지자고 할까, 승민은 어이도 없고 화가 났다.



"네 말대로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도 못하잖아. 근데 사귀어서 뭐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그게 나 때문이야? 너가 우리 학원 안 왔잖아! 너가 카톡도 안 되잖아!"

"나도 너네 학원 다니고 싶어. 카톡도 하고 싶어. 근데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러니까 헤어지자고 하잖아!"

"그럼 내가 준 마스크 도로 내놔!"



세상에나 코로나가 이 아이들의 사랑?까지도 갈라놓다니!!!

역시 애들은 애들인가 보다. 화가 나서 울며 외친 승민의 마지막 외침이 왜 이렇게 귀여웠던지~ㅎㅎㅎ

읽으면서 얼마나 몽글몽글했던지~

코로나가 참으로 미웠다. 코로나의 위력이 어린아이들의 순수함까지도 묵살해버린 게 많이 가슴 아팠다.

어서 빨리 종식이 되어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맘껏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승민아, 너희들이 사귀고 헤어지는 일까지 선생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고 틀린 부분을 고쳐 주고 할 수는 없어. 그런데. 음, 마스크 도로 내놓으라고 그런 건, 좀 아닌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선생님도 안타깝다, 미안해."

328P



/





노년의 그녀에서 청소년의 그녀까지의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 <우리가 쓴 것>.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야기라 더욱 공감하고 잔잔히 다가왔다.

특히나 <오로라의 밤>에서 보여준 고부간의 모습이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마지막을 초등학생들의 첫사랑으로 마무리한 것에 뭐랄까, 다소 웃음을 머금은 채 책을 덮을 수 있어서 좋았다랄까? ㅎㅎ

<우리가 쓴 것>은 8편의 단편 속에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란 것에 조남주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