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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작가가 있다. 글을 쓸 때 요리할 시간이 없어 근처에서 크로켓을 자주 사다 먹었다는데 어떤 크로켓인지 보니 아무 거나 대충 산 게 아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주방일 하던 사람들에게 시켜서 만들던 고급스러운 맛을 떠올리게 하는 크로켓, 그 추억의 맛과 향을 놓치지 않는 그녀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 미식가로, 뛰어난 음식 솜씨까지 갖추고 있는 그녀는 동서양의 온갖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내는 수준이니 음식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싶으면서도 음식 하나를 고르는 것도 예사로 하지 않는 점이 새롭기도 하다.
어린 시절 이야기, 결혼한 뒤 외국에 머물던 때의 이야기, 혼자 살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갖가지 음식이 자리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들은 먹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고 자라서일까, 그녀는 음식을 간단히 만들어낸다. 혀에 익은 맛들이 그녀의 손을 인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음식 중에서 달콤한 향이 진동하는 브레드 버터푸딩이 계속 생각난다. 바닐라 향이 나는 따끈따끈한 요리를 이 밤에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교적 간단해 책에 나온 대로 한 번 시도해 봄직한 음식이다. 다른 집안일은 필요하니까 할 뿐이지만 요리를 하는 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그녀가 하는 요리는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 요리를 먹어본 사람이 괜히 부러워진다.
모리 마리의 에세이를 읽으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릴 수 있어 좋았다.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지만 사고 방식은 현대인 못지 않은 그녀에게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공을 들이는 모리 마리. 그녀는 오직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차를 끓인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는 그녀의 일상은 우아하게 흘러간다. 예쁜 찻잔과 맛있는 차, 장미꽃 몇 송이로 좁은 방 안을 화려한 응접실로 만들어 내는 그녀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정확히 알고 있던 그녀는 진정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먹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면서 살던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부족함 없이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녀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 덕일까. 그때와 비교하면 더없이 궁핍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작은 행복을 누렸던 그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던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사람들을 부럽게 만드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그 기분을 만끽하던 그녀의 행복한 표정을 상상한다. 자신의 삶을 우아하게 가꿔 나가던 그녀가 쓴 소설은 또 어떤 분위기일까. 타고난 심미안을 소설 속에도 풀어넣었으리라 짐작한다.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생기 넘치는 삶의 태도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새삼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