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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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시대를 살다 간 윤동주의 시를 좋아해서 그의 시만 즐겨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감동을 주는 시를 가만히 외우는 시간은 참 좋았지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통 시를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체 게바라의 노트에 세사르 바예호의 시가 필사되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체 게바라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시는 과연 어떨지 궁금해서 시집을 펼쳤습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을 읽고 있자니 지금 겪고 있는 자잘한 어려움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가난했던 페루의 시인, 고국에서 도망쳐 타지에서 떠돌다 생을 마쳐야 했던 시인, 아픈 몸을 이끌고 힘들게 살아야했던 그 시인은 오히려 모두에게 위안이 되는 시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시 속에서 가족의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방관하는 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있는 한 묵묵히 끝까지 삶을 살아냈습니다. 자신을 타국으로 쫓아낸 사람들을 저주할 만도 하지만 오히려 인류애를 노래하기도 했지요. 그는 얼마만큼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여러 편의 시가 인상 깊었는데 그 중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고통과 괴로움, 아픔 등의 시어가 보여주는 삶의 어두움이 이해가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고통, 즐거움 뒤에 숨어 있는 슬픔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 두려움을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이 모여 온전한 삶을 이루는 것임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요. 고통 속에서도 흐르는 시간은 결국 우리를 고통의 끝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가난과 병으로 힘들게 살다간 그의 46년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겠지요. 중남미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으로 꼽히는 그의 시를 이제서라도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오늘 나는 기분 좋게 행복하고 싶다'를 읽으며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합니다. 행복을 바라고 갈구했던 그가 생전에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간 세사르 바예호. 이제는 그의 연인, 친구들과 저 높은 곳에서 영원히 안식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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