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을 만나 특별한 감정을 키워갑니다. 잡기 힘들고 잡았다 느껴도 온전히 내 것이라 자신할 수 없는 감정, 고통과 분노를 동반하는 그 특별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마키노와 요코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끌립니다.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잘 통하기 때문이지요.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이유가 있을까요. 한 번 만나고 사랑에 빠진 이들은 5년 동안 단 세 번을 만나고 평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마키노와 국제적인 저널리스트인 요코의 만남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요코는 마키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딸이고 마키노는 요코가 팬으로서 좋아하는 음악가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음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한 번의 만남으로 서로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들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서 그 마음을 거듭 확인합니다. 약혼자와의 관계를 정리한 요코와 그녀를 기다린 마키노는 앞날을 약속합니다. 이제 행복한 나날이 시작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요. 이들은 쉽사리 연결되지 못합니다.

오해라는 것은 손쓸 틈 없이 마음을 장악해 버립니다. 이것을 바로 풀어버리지 않으면 마음은 굳게 닫혀버리고 말지요. 갑자기 요코의 마음에 심어진 오해는 마키노에게 바로 전해져 허무하리만큼 순식간에 친밀했던 관계가 끊어집니다. 마음이 통하는 단 한 사람을 잃어버린 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에 발을 담그는 이들이 그저 안타깝습니다. 헤어질 때 무엇인가 시도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은 여느 연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 이것을 느꼈더라면, 깨달았더라면 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겠지요.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바라는 소망일지도 모릅니다.

30대 후반의 사랑 이야기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닙니다. 저자는 주인공들의 일과 가치관을 통해 성숙한 내면세계를 진중하게 그리면서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배려, 고독과 절망감을 안타깝게 풀어냅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키노와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요코의 모습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것은 물론 인류애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테러 속에서 살아남은 뒤 후유증에 시달리는 요코와 슬럼프를 겪으며 기타를 만질 수 없게 된 마키노가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는지를 보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고수하며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티네'는 낮에 열리는 공연을 뜻하는 말입니다. 역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마티네는 공연 시간대를 넓혀 예술을 향유하는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밤의 연주로 시작해 마티네로 끝맺는 이 이야기는 슬럼프를 극복한 마키노의 더없이 훌륭한 연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리라는 의미와 더불어 한층 성장한 내면이 이끌, 포용력 있는 사랑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의 여운은 마티네의 끝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언제까지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기를 기대해봅니다.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과거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꿀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바뀌어버린다고도 말할 수 있죠. 과거는 그만큼 섬세하고 감지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요?"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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