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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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걷다가 가끔 피아노 소리를 듣습니다. 취미로 치는 듯한데 듣기는 좋습니다. 맑은 날에는 음표가 떠다니는 게 보이는 것 같아 재미도 있습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까맣고 윤기 나는 피아노는 참 아름다운 악기였습니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생겨나는 맑은 음이 공중에서 퍼지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재능 없음을 진작 깨닫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배우는 것을 멈췄지만 가장 좋아하는 악기가 피아노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악기는 사람의 영혼을 울리지요. 그 중 피아노는 여전히 제 영혼을 울리는 악기입니다.

<꿀벌과 천둥>은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 속에 나오는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조성진 씨가 떠오릅니다.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그는 이미 15세에 이 콩쿠르에서 1위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더 궁금했습니다. 세계 3대 콩쿠르로 진입하는 관문이라고 여겨지는 콩쿠르를 모델로 했기에 당연히 참가자들의 수준이 높을 거라 여겼고 짐작대로 책에 등장하는 참가자들은 대단한 재능을 펼쳐냅니다. 비슷한 기량을 가진 이들을 의식하면서 온갖 감정을 느끼고 중압감을 극복해 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음악 속에서 살아 숨쉽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천재 소년, 가자마 진이 콩쿠르에 활력을 불어넣고 아야, 마사루, 아카시와 공감하며 숨은 능력을 끌어내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양봉가의 아들로 자연 속에서 자라면서 손에 흙을 묻혀가며 일하는 소년. '세상을 축복하는 음표'인 꿀벌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내는, 절대음감을 가진 그는 이 세상이 음악으로 가득 차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거장이 남겨놓은 '선물'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이 소년이 틀을 깨는 파격적인 연주를 하며 심사위원들을 분노로 몰아넣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게 하는 연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습니다. 맑고 깨끗한 성품이 드러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 예측합니다.

저자는 진을 비롯한 참가자뿐 아니라 심사위원, 무대매니저, 조율사 등 콩쿠르와 관계된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을 세세히 살피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회를 그려냅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곳에는 당연히 긴장과 흥분과 설렘 가득한 일들이 펼쳐지는 법이지요.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반인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한 마디로 감동적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곳,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이 값지게 다가옵니다. 자연의 품에 안기는 환상을 선사하는 피아노 연주는 또 어찌나 생생한지 콩쿠르 현장에 있으면 이런 감정이 생길까 싶습니다.

책을 읽다 한 차례씩 예선이 끝날 때마다 쉬어야 했습니다. 관객들이 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온전히 음악을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음악의 세계를 노닐다 기운을 다 써버린 느낌이 들었거든요. 참가자들이 연주하던 곡들을 찾아서 들으며 진과 아야, 마사루와 아카시는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할까 상상하는 시간은 또 다른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재능을 지닌 천재들이라도 고민하고 고뇌하며 음악의 길을 갑니다. 쉽게 얻은 것이라 그만큼 소중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입장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겠지요.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이 음악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구상하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이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따라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산, 바다, 들판, 도시 그 어디든. 펼쳐지는 음악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바람이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새들은 노래하고 나비와 꿀벌이 춤추는 그곳은 기분 좋게 편안합니다. 세상을 오선지로, 꿀벌을 음표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음악을 듣는 셈입니다. 빗소리, 바람 소리, 천둥 치는 소리가 모두 음악인 것이지요. 때로는 태풍이 모든 것을 할퀴고 가지만 그래도 자연은 스스로를 회복시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들이 지나면 이윽고 찾아오는 밝은 햇빛은 고난 뒤의 위로가 아닐까요. 음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 살아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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