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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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헤치며 서핑을 하는 시몽 랭브르는 생기가 넘칩니다. 추운 날씨도, 세찬 파도도 그의 활력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합니다. 그의 육체는 열아홉 젊은이답게 활짝 피어났습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 사회를 겪을 이 청년, 시몽. 그의 앞에는 밝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삶은 암흑 속에 잠겨 버립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극과 극을 오가는 경험을 한 시몽은 이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초반부에서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는 시몽을 보여줍니다. 삶의 기쁨을 제대로 느낄 줄 아는 시몽, 그 눈부신 젊음 뒤를 쫓아온 것이 죽음이라니! 충격적인 전개 뒤에는 심장 이식이라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뇌사 판정, 장기 기증 동의 절차, 장기 기증자와 대기자 연결, 장기 적출과 이식 과정은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진행됩니다. 병원과 생체 의학국 의사, 간호사들은 긴밀히 연계해 만 하루 동안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뇌사 이후 장기는 점점 그 기능을 잃어가기에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그들을 따라 함께 호흡이 가빠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뇌사 상태인 시몽은 꼭 잠이 든 모습입니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은 그가 살아 있다고 믿게 합니다.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은 그 모습에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갑자기 닥친 죽음, 실감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충격 은 이들 앞에 던져진 한 문장은 이들을 더한 고통으로 몰고 갑니다. "장기 기증을 고려해 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p.141) 아들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장기 기증을 생각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하나의 건강한 삶이 둘, 셋 또는 대여섯에게 건강한 삶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좋은 것일까요.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죽음이 꼭 들어가야 한다면 어떨까요. 더구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이 결정해야 하는 그 일이 가슴을 찢는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가치관의 차이로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몽의 부모가 결국 내리게 된 결정에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이미 세상을 뜬 한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나눔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삶의 전이를 지켜보는 동안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이 생활이 한순간에 끝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갑자기 잃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일을 상상하니 그저 눈물만 납니다. 시몽의 죽음 앞에서 그의 부모가 겪는 충격과 고통스러운 마음을 들여다보며 함께 슬퍼할 수밖에요.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시몽의 모습을 더듬어가는 이들은 서서히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가장 찬란한 시절을 살던 시몽의 모습이 마음에 각인되겠지요. 충격 뒤에 찾아오는 절망을 피하지 않는 이들의 용기가 언젠가는 내게도 생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시몽의 육체는 마음대로 약탈해도 되는 장기 저장고가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고인의 의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해본 뒤
거부로 결론 나면 절차는 중단됩니다.(p.151)

그만의 특별한 기억과 이렇게 분산된 육체를 어떻게 결부시켜야 할까? 그의 존재, 이 세상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 그의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부글거리는 기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시몽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말끔하고 온전하다. 그것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 아이다.(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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