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험한 비너스>를 읽었습니다. 유명한 작가인데 이제야 그의 소설을 보게 됐네요. 책을 읽어보니 왜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알겠더군요. 일단 어려운 말이 없어 쉽게 읽힙니다. 5백 쪽 가까이 되는 양이지만 읽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리저리 꼬여있는 사건들이 복잡하게 느껴지지가 않고 다채로운 등장인물은 마음을 잡아끕니다. 다른 작품들도 분명 이렇겠지요. 이런 걸 다 제쳐두고라도 무겁지 않은 어조로 윤리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솜씨는 정말 높이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수의사입니다. 동물을 진료하는,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동생의 실종을 알리는 전화가 온 뒤 유산상속 분쟁에 휘말리면서 미심쩍었던 어머니의 죽음을 되짚고 친아버지의 유작에 대한 음모를 파헤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성장과정과 어머니의 비밀, 프랙털 도형과 울람 나선 등과 관련된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 연구에 대한 내용들이 드러납니다.
위독한 양아버지와 실종된 동생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상 주인공에게 알려 줄 수 없는 상황인지라 주인공은 동생과 비밀결혼을 한 여자와 한 팀을 이뤄 진실에 접근해갑니다. 생각할수록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주변 인물들은 무엇을 감추고 있으며, 어머니의 죽음과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 연구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 이야기는 며칠 만에 휘몰아치듯 사건이 전개되면서 모든 일들이 서로 연관되기 때문에 내용을 끊어서 읽기가 힘듭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아마 많은 독자가 저와 같은 인물을 의심하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과 동기에 대해서는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의심해가며 생각해봤지만 결국 맞히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10명이면 10명 모두 납득하는 살인 동기가 아니라, ‘뭐야? 이런 걸로 사람을 죽여?’ 하는 추리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지요. 살인동기를 확인하고 정확히 저런 생각이 들었으니 저는 저자의 의도에 부합한 독자인 것 같네요.

책을 읽으면서 뇌의학과 수학에 관련된 용어가 나오면 검색해보곤 했습니다.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 프랙털 도형, 울람 나선 등을 검색했는데 특히 프랙털 도형의 이미지를 보면서 역자의 말처럼 '자연의 정밀한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프랙털이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닮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말하는데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 식물, 공작의 깃털무늬, 구름과 산, 복잡하게 생긴 해안선의 모양, 은하의 신비스런 모습 등이 모두 프랙털 구조라고 하는군요. 주인공이 싫어하던 콜리플라워나 브로콜리에서도 발견되는 프랙털은 용어가 주는 생소함만큼 멀리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비한 영역인 뇌는 아직까지 미지의 세계입니다. 이 책의 중심소재인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도 이런 뇌와 관련된 현상이지요. 사고로 인해 미술, 수학, 음악 등에 특별한 재능을 나타내게 된 경우를 보고 실제로 뇌의 좌측 측두엽에 자기장을 흘린 실험에서 얼마간의 성과도 있었다고 하는데 만약 이 책에서처럼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기술이 발표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갑자기 특별한 지적 능력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끝도 없이 밀려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그것보다 뇌를 건드려 원하는 능력을 얻겠다는 발상 자체가 용납될 만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사람이 손을 대도 되는 영역인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누구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벽한 아이들을 만들어내고 기억을 조작해서 사람을 조종할 수 있게 될까요. 뇌를 개조해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고 신체를 개조해 인간병기로 쓰일 수도 있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요. 이렇게 꼬리를 무는 생각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인류의 발전이라는 미명하게 온갖 실험을 한, 하고 있을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책은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떠오르는 생각은 왜 이런 것들 뿐인지 모르겠네요. 의학계에서 자행되는 동물실험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허용범위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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