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을 사랑한 강아지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47
알리체 바르베리니 지음, 유지연 옮김 / 지양어린이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봤던 흑백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강아지를 보니 괜히 울적해지는 기분입니다. 이 강아지는 서커스단에서 재주를 부리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요. 그러나 정작 강아지는 즐겁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그저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강아지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환하게 빛나는 달님을 좋아합니다. 하늘을 밝히는 달이 아닌 소품으로 쓰이는 달님이지요. 공연 중에도 달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강아지. 그런데 공연이 끝난 후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달님이 심하게 망가지고 맙니다. 쓸모없어진 달님은 버려지고 이를 보다 못한 강아지는 수레에 달님을 싣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비가 오는 거리를 헤매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강아지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 강아지와 달님은 어떻게 될까요.

이 책에 그려진 그림은 온통 회색빛을 띱니다. 강아지가 쓴 고깔모자, 강아지 뺨에 남은 분장, 수레에 매달린 풍선만이 붉은색이지요. 이 붉은색은 과거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의 여정을 따라다니던 붉은색은 강아지가 아이를 만나면서 하나씩 사라집니다. 아이가 수레에 강아지를 태워 갈 때 풍선은 하늘로 천천히 날아가고 나중에 다시 등장한 강아지는 평범한 여느 강아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더 이상 강아지는 고깔모자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할 필요가 없는 생활을 하게 된 거지요.

저자는 몇 줄의 지문을 제외하고는 그림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며 배경이 되는 몇몇 장면을 통해 1900년대 파리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합니다. 공연문화가 극장으로 옮겨지는 과도기를 잘 표현한 듯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을 때 이야기꾼이나 사당패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었지요. 시간이 지나 라디오, 극장, 텔레비전 등이 생기면서 전통적인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전통극은 전용극장이나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지요.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문명의 발달로 겪게 된 일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는 1902년에 최초의 판타지 영화 '달나라 여행'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그에게 바치는 그림책이라고 하지요. 흑백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강아지와 달의 탈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강아지, 새 생명을 얻은 달 모형은 이 감독의 영화처럼 우리에게 판타지를 선사합니다.


버림받은 존재의 비상은 누군가에게는 꿈을,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는 소재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님의 부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무표정했던 강아지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되어서 기쁩니다. 사랑에 목말랐던 강아지는 이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겠지요. 누구에게나 사랑은 필요한 것, 누구나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