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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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설>은 통속적인 소설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엠마뉘엘 카레르의 경험이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저자의 경험인지 궁금해지는데 인생에 대해 공포라고 불릴만한 감정을 갖고 있는 주인공을 보니 어느 정도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전개방식은 특정한 사건보다는 그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이 이야기는 밝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이 밝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엠마뉘엘은 나치에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고 납치된 외조부를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외조부가 실종된 후 가족들은 이 일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며 죄의식에 시달리지요. 예민한 감성을 지닌 엠마뉘엘은 외조부의 사건에 특히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금기시된 외조부의 실종사건은 중년이 된 그의 마음을 아직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억눌린 마음이 빚어내는 수치심과 비애가 한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어둡게 만드는지, 그로인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상처를 입게 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극복해야 할 것을 극복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들은 절망을 선사합니다.

연인과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의심하고 불행이 될 만한 씨앗을 찾는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외조부처럼 자신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삶에 대한 공포는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던 그는 외조부가 실종되었을 때의 나이에 다다르자 드디어 그를 괴롭히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용기를 냅니다. 외조부의 과거를 제대로 알고 수면 밖으로 끄집어내려 하는데 그 과정은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머니는 타인이 알게 됐을 때 삶이 흔들릴 수도 있는 그 이야기를 꺼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어머니나 그의 삶은 영영 그늘 속에 묻힐 수밖에 없겠지요.

그는 외조부와 사라진 해와 같은 해에 사라졌다가 50년이 넘어 러시아의 한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헝가리인의 르포르타주에 열중합니다. 그는 자신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러시아에서 외조부가 할 수 있었던 러시아어에 집착합니다. 동시에 연인에 대한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단편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취재는 생각만큼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면모가 강한 그의 사랑은 그가 러시아로 떠날 때마다 위태로워지다 그가 발표한 단편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자신을 구원하리라 여겼던 외조부의 삶에 대한 이해와 끝맺음, 연인과의 사랑은 이제 어떻게 진행될까요. 처음에는 맥락을 이해하느라 느리게 넘어가지만 뒤로 갈수록 읽기가 수월해지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이끌어냅니다.


저자는 주인공인 엠마뉘엘을 평생 따라다닌 어두운 그림자의 의미와 거기서 벗어날 용기를 내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부분, 똑바로 볼 용기를 내지 못하는 그 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그의 내면 여행과도 같은 러시아 여행은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삶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비극으로 인해 성장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보는 이에게는 오히려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금기.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오묘합니다. 가끔은 금지된 일 너머에 뭔가 굉장한 것이 있지 않은가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때로는 비난을, 때로는 찬사를 듣게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어떤 사회에든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는 한 집안에서도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누구나 가끔 금지된 일을 해보고픈 마음이 듭니다. 그것이 치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사회 전체를 흔들 무지막지하고 파렴치한 행동이 아닐 것이 확실하다면 금기를 깨는 것은 해봄직한 일인 듯합니다. 엠마뉘엘처럼 그 일이 내면의 어둠을 걷어낼 기회가 된다면 더더욱 놓칠 수 없는 일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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