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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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쁘게 살 때나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살 때나 일요일은 한결같은 날이었습니다.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었거든요. 휴대폰을 끄고 일요일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보내는 일요일 오전은 일주일 동안 누적됐던 피로와 나쁜 기분을 씻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른하고 느긋했던 일요일을 맞지 못한지 한참 되다보니 그 시간들이 정말로 좋았구나 싶습니다.

비록 그때와 같은 일요일은 맞이하지 못하지만 일요일마다 느꼈던 그 기분을 다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좋은 장소에 가게 됐을 때가 그렇지요. 나중에 생각하면 그때가 인생의 일요일이었구나 싶을 테지요. 일요일이라는 말이 주는 편안함과 따스함에는 사람을 위로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 여행을 회고하는 저자의 글에도 이런 감정이 듬뿍 실려 있습니다. 고요한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답게 온화한 글은 <인생의 일요일들>이라는 제목에 근사하게 어울립니다. 무엇을 보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다정한 글이 마음에 듭니다.

슬픈 마음을 안고 떠난 여행에서 얻게 된 풍경과 기억은 그녀를 기쁨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고 하지요. 슬프고 지친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이 그곳에 다 있었다는 그녀의 말을 듣다보면 그리스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같은 것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은 다를 테지요. 모넴바시아의 바위를 보며 괴테의 시,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고 스파르타의 폐허를 보며 무상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것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모넴바시아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볼 때, 크레타 섬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에게 해의 푸른빛을 볼 때는 그녀처럼 감탄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압도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녀가 전해주는 '긴장 풀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 마음에 충실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미 제게도 있는 시간들입니다. 낯선 곳을 그냥 걸어 다니고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었다가 낯선 사람들과 잠깐씩 어울리고 그렇게 또 각자의 길을 가곤 했던 마음 편했던 나날들. 얽매이지 않는 시간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느끼게 했던 그날들은 힘들 때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을 발휘합니다.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밖에 차지하지 못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적절한 때에 미치는 영향은 크나큰 것이라 자꾸만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저자가 풀어 놓은 기억들처럼, 오래 갈 따스한 기억들을 되도록 많이 품고 살고 싶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이 삶을 좀 더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따스한 기억 한 뭉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우리가 천국을 그리워할 수만 있지 그곳에서 계속 살 수는 없다고 합니다. 대신, 천국을 잠시 짧게 만날 수는 있다고 하니 그 짧은 만남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모든 시간이 인생의 일요일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에 그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겠지요. 당장 떠날 수 없기에 일요일의 냄새 가득한 에세이를 통해 위안을 얻고 또 일주일을 시작할 힘을 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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