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시런니가 필요해 - 인생 신생아 은시런니의 사이다표 드립뱅크
유은실 지음 / MY(흐름출판)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의 행동이 너무 답답해서 그만 봐야하나 고민했던 적이 많습니다. 왜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고난 끝에 행복을 얻어야만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고난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신이 망가질 정도로 충격을 받는 일로 이어질 때도 있어서 저렇게 꼭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억울함을 속으로 삭이고 모든 것을 감내하는 날들이 끝없이 이어진 끝에 여주인공은 드디어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행복을 얻으면 좋은 건가요.

다행인 것은 요즘 몇 년 사이에 간혹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회사를 무대로 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침없이 할 말을 하는 장면을 보면 사이다를 마셨을 때처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그런 드라마를 '사이다 드라마'라고 부르지요. 나도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화면을 보면서 등장인물에, 빙의해 한바탕 말을 쏟아내는 상상도 합니다. 언제 이런 드라마가 또 나오나 기다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사이다 드립을 날리는 은시런니를 만나라고 하고 싶네요.

은시런니는 매우 소심하지만 할 말은 하고 사는 우리들의 옆집 언니입니다. 불혹이 다 된 나이라 인생을 사는 데 내공이 생긴 걸까요. 엄마가 보기에는 잉여인간 같아 보이지만 먹고 놀고 그림 그리며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며 잘 살아가는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합니다. 그녀를 만나 대화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자주 겪었을 이야기를 가볍고 재미있게 푸는 그녀만의 이야기에 빠지게 됩니다. 매일 다이어트를 하고 다시 그 굴레에 매이기도 하는 은시런니는 의지박약인 모습을 드러내지만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니까요. 때로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 외로움을 끌어 안아버리고 욕을 하고 싶은 날에는 '더워서 수박을 씨 발라 먹었다.'며 능청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드는 것은 삶에 삶을 더하는 일이라며 그 무게를 견디라는 진지한 이야기도 하는 그녀는 유머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센스를 지닌 것 같습니다. 남들이 쓸데없는 참견을 할 때는 무표정으로 한 마디씩 하는데 그게  또 그렇게 공감이 됩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남의 인생에 무한대로 참견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문장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남의 삶을 기웃대며 비판하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는 사람들은 은시런니의 말을 듣고 반성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은시런니는 저자 유은실의 이름에서 따온 캐릭터 이름입니다.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한 거지요. 저자는 삶에 대해, 일상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은시런니를 통해 표출하면서 속이 시원했을 겁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은시런니를 본 많은 사람들도 덩달아 그랬겠지요. 제가 그런 것처럼요. 누구나 속에만 담아두는 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말을 대신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스트레스의 반은 풀리지 않을까요. 내 인생이 뭐 이런가, 회사에는 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가, 마음대로 되는 일은 왜 없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 은시런니와 함께 이야기하며 신나게 웃고 나면 또 하루를 시작할 용기가 생길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