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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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정문이 열립니다. 성난 기세로 몰려나오는 학생들의 얼굴은 결의로 가득합니다. 전경들과 마주친 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그에 맞서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아댑니다. 보도블록을 깨뜨려 투척하는 학생들은 있는 힘을 짜내지만 곧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장비로 무장한 기동대에게 제압당합니다.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고 기동대는 일사분란하게 이들을 뒤쫓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 대학가에서,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정명의 소설 <선한 이웃>에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과 이를 억압하던 세력은 운동권의 영웅 최민석과 그를 잡아들이려는 정보기관 요원의 모습으로 대변됩니다. 행적을 들키지 않고 수려한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민석을 잡기 위한 공작 과정은 치밀합니다. 맹수가 먹잇감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듯 요원 김기준은 몇 년을 공들여 작선을 수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최민석으로 의심되는 연출가 이태주와 그의 연인 김진아의 삶이 드러납니다. 그들을 통해 그 당시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가, 운동가들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현재를 바라보게 됩니다.

3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한 편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지고 다른 한 편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맡은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착하게 하루를 살던 이 '선한 이웃'은 상부의 명령을 훌륭히 따르던 공작원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출근하던 회사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력을 쥔 이들에 의해 억압당하면서도 이에 순응하고 그 부당함을 외면하던 '선한 이웃'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나는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일단 저는 그 부분에서 자신이 없습니다.

인생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내 인생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당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그 당연한 사실을 의심해보게 하는 이야기에 소름이 돋습니다. 교묘히 사람들의 생각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정치권의 언론 통제를 모른척하고, 정치인들의 우스꽝스러운 권력다툼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끊었던 이때까지의 시간이 참으로 아깝습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그것을 영원히 가지려 했던 권력자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 선한 이웃의 굴레를 이제는 벗어던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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