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페트라 휠스만 지음, 박정미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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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무슨 일이든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지키며 사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성격상 계획을 세우는 데 전혀 소질이 없는지라 그런 사람을 보면 신기합니다. 여주인공인 이자벨레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멜로드라마를 챙겨보고 요일별로 해야 할 일을 정해 놓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11년 동안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로 점심 식사를 하다니요. 그 누들 수프가 천상의 맛을 낸다고 해도 11년은 너무 오랜 기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틀을 벗어나면 인생이 엉망이 될 거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더군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작은 변화를 큰 일로 받아들이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녀가 좀 이상하다가 답답했지만 갈수록 안쓰럽다가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몇 가지 단점이 눈에 보였지만 성장과정을 알게 되면서 이자벨레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세상에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장점이 단점을 덮을 때도 있으니 단점은 너그럽게 보아 넘겨야지요.

이 소설은 단골식당이 문을 닫은 뒤로 이자벨레의 일상에 생기는 변화를 밝은 분위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로맨스 소설답게 새로운 인물과의 사랑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이자벨레가 새로 생긴 식당의 요리사 옌스와 아웅다웅하며 지내다 현실적인 사랑에 눈을 뜨는 전개는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읽는 재미를 줍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사는 여자와 사랑에 냉소적인 남자가 점점 자주 만나게 되면서 가족처럼 친밀해지는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모릅니다. 옌스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이자벨레는 행복해하지요. 제대로 된 음식을 갖춰먹지 못하고 살아온 그녀에게는 정말 잘 된 일인 것 같네요.

이자벨레의 주위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녀가 기쁠 때는 물론 힘들 때 함께 하는 친구들은 그녀의 변화를 지지합니다. 친구를 아끼는 마음과 적절한 충고는 그녀의 인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자벨레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데에는 이들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이 드네요. 27살인데 17살이 할 법한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다소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면도 있었지만 조금씩 철이 드는 모습을 보다보니 앞으로는 무척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사춘기 소녀들이 꿈꾸는 환상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자신이 직접 만든 틀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져 있던 환경이 더없이 편안할 테니까요. 그러나 때로는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새롭게 시작하는 그녀의 미래는 지금까지보다는 분명히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멋지고 완벽한 사랑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행복을 느끼게 되겠지요.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을 꿈꾸다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게 된 것처럼 그녀는 앞으로도 좋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뜬금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를 읽고 나니 퐁당 쇼콜라가 떠오릅니다. 먹을 때마다 이자벨레에게 꿈같은 맛을 선사하던 퐁당 쇼콜라!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케이크입니다.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이 케이크가 소설 속에 계속 등장하니 계속 그 맛이 떠올라 혼났습니다. 이 기회에 홈베이킹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친철하게 책 마지막 장에 레시피가 실려 있거든요. 직접 만든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며 소설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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