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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온기 - 내가 먹은 채소에 관한 40가지 기억
김영주 지음, 홍명희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싱싱하고 푸르른 채소를 좋아합니다. 생각하면 힘이 나는 이 채소들은 각각 고유한 향과 맛이 있어 먹을 때마다 입이 즐겁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나물과 채소무침을 먹은 덕에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지금껏 먹어왔던 채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40가지나 되는 채소에 얽힌 저자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덩달아 옛 추억을 더듬게 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지만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채소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지요.
그대로 먹기도 하고 샐러드로, 구워서, 소스로 먹는 토마토, 장아찌나 피클로 만드는 양파와 오이, 구우면 고소한 맛을 내는 마늘, 가니쉬로 훌륭한 아스파라거스, 기침을 멎게 하는 맵고도 향긋한 생강,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무, 달콤한 맛이 간식으로 제격인 고구마 등 채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보면서 참 재밌다 싶었습니다. 채소의 효능과 간단한 요리법도 볼만 했지만 언젠가 채소를 먹으며 했던 생각과 비슷한 내용도 있고 채소를 통해 위안을 얻던 상황들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지요.
텅 빈 주머니로 인해 책을 팔아 장을 보던 날, 생각보다 맛있었던 시금치나물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눈물을 글썽이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 샐러드를 만들려고 양상추를 뜯다가 고민도 같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그녀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던 시기에 먹은 표고버섯 들깻국이 몸과 마음을 함께 녹이던 기억은 얼마나 따뜻할까요. 이런 기억들이 그때 만난 채소를 특별한 채소로 만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래 전, 외할머니는 봄이면 쑥버무리를 해서 가져오시곤 했습니다. 쑥향이 그윽한 쑥버무리는 별미였지요. 녹진한 찹쌀가루와 약간 마른 듯한 쑥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습니다. 그 뒤로 그렇게 맛있는 쑥버무리는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먹는 제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던 외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이제 쑥이 들어간 음식을 보면 외할머니의 미소가 떠오릅니다. 고사리, 도라지, 두릅, 곰취, 쑥 등 좋아하는 채소가 많지만 그 중에 제일은 앞으로도 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