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에 떡 하니 나타나 있듯 이 이야기는 하롤드 영감이 이케아 사장을 납치하는 이야기입니다. 표지를 보면 온 마을이 눈으로 덮인 추운 날 밤, 움직이는 차가 한 대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넘겼는데 읽은 후에 그림을 자세히 보니 차 안에 두 사람이 앉아 있네요. 하롤드와 이케아 사장이 이케아로 향하는 장면인가 봅니다. 둘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납치를 하는 쪽은 어설픈 초짜 납치범인데다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기분이 안 좋고 납치를 당한 쪽은 갖은 수모를 당한 뒤라 기분이 좋을 리가 없거든요.  

 

주인공인 하롤드 M. 룬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구점을 운영하다 몇 년 전에 파산을 했습니다. 그 시기에 아내는 치매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잊고 이제는 남편을 못 알아봅니다. 두 아들은 연락도 잘 안 되고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기분에 우울해하는 그의 모습이 참 안돼 보입니다. 그런데 그의 절망감은 점점 분노가 되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 표적은 이케아 사장이 되어 하롤드는 그를 찾아갑니다. 하롤드가 이케아 사장을 증오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을에 이케아가 들어서면서 하롤드가 운영하는 가구점이 문을 닫게 되었고 아내의 치매도 그 때문인 듯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겁니다.

 

대기업의 세력 확장에 피해를 입은 모든 이를 대변하듯 그렇게 하롤드는 거대기업의 사장에게로 돌진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자 하는 것인데 납치극을 벌이다니요. 한편으로는 다른 방법으로 사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힘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롤드의 계획이 어떻게 실현될지 궁금해 책장을 넘기는데 그의 과거와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소설 주인공치고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고집스러운 성격과 자녀들에게 냉정하게 구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가 않아 감정이입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입니다. 아들들이 그의 뒤를 이을 생각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못되게 굴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싶어 한숨이 납니다. 그가 마음속으로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도 하롤드에게는 명함을 못 내밀겠네요.

 

이 소설은 가볍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보여주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낙오되는 사람들과 변화를 당연하게만 받아들이고 주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사회에서도 숱하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오래된 것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닌데 이를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 십 년을 사용해도 저만의 멋을 내는 가구를 버리고 똑같은 모양의 가구를 집에 들이는 사람들. 이들의 집은 거의 비슷한 풍경이겠지요. 개성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자리를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가구를 팔며 즐거워하던 하롤드가 이를 보며 탄식할 만도 합니다.

 

노르웨이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간, 평범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벌이는 이야기는 여운을 남깁니다. 그는 이제 어찌 되는 걸까요. 납치는 했으나 개운치는 않은 그의 마음은 이케아 사장을 두렵게 만들었다는 성과에 위로받았을까요. 추운 나라에서 일어나는 납치극을 보면서 마음도 추워집니다. 한평생 열심히 노력하며 산 인생이 이렇게 고달파질 수 있다는 게 슬프고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살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할 그가 가엾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겠지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정말 포기한다면 그 순간이 덜 절망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하롤드가 마지막까지 힘을 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프로데그뤼텐,북유럽소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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