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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뜰
탁현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평점 :

<사임당의 뜰>에는 신사임당의 그림들이 실려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포도', '수박과 들쥐', '양귀비와 도마뱀' 외에도 많은 그림이 있어 한 점 한 점 감상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꽃과 채소, 과일, 곤충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섬세한 그림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들을 그리기 전에 얼마나 자세히 대상을 관찰했을까요. 나비의 더듬이, 방아깨비의 다리, 수박 덩굴이 정말 자연스러워 부드러운 그림체를 더욱 살리는 것 같습니다. 작은 생물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그림을 그렸을 신사임당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작품마다 해설이 있어 더 자세히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포도와 오이, 가지가 다산을 상징하고 풀과 벌레를 그린 초충도가 일종의 약초 도감이라 그녀가 그림을 그리면서 약초 공부도 겸했을 수 있다는 사실, 포도를 그려 처음으로 이름을 낸 화가였다는 사실 등을 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도 있었지요. 그리고 5만 원권에 그려진 묵포도는 채색이 되어있다는 말에 얼른 지폐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원본을 살렸으면 더 좋았겠다는 저자의 말에 적극 동감합니다. 수묵화와 느낌이 많이 달라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이 책에는 신사임당의 딸인 매창의 그림도 몇 점 실려 있습니다. 어머니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매창의 그림 또한 훌륭합니다. 그 시절의 사대부 여인들과는 달리 딸을 아들 키우듯 한 어머니 덕에 붓글씨에 능했고 그로 인해 사대부가 먹으로만 그리던 매화나 대나무를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녀가 다정하게 앉아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정겨웠을까요.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렸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그녀는 진정 행복했을 겁니다. 저자는 '어머니는 초충도의 원조, 딸은 수묵화조도의 선두주자'라고 했지요. 모녀 화가로서 그녀들이 남긴 그림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시간은 신사임당의 뜰을 눈으로 보는 듯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당 있는 집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목련 나무와 감나무, 장미꽃과 봉숭아, 나팔꽃 등이 가득하던 그곳에서 놀 때는 참 재미있었지요. 나무와 꽃에 물도 주고 열매도 따먹고 그냥 한참을 보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개미와 사마귀 같은 곤충도 관찰하고 봉숭아꽃을 따서 손톱에 물을 들이곤 하던 그때가 정말 좋았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공용정원이 아닌 나만의 정원에서 아이를 놀게 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나무를, 꽃을 키우며 느꼈던 감정을 아이도 느끼며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