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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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때때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생긴다. 부끄러움, 수치심, 슬픔, 고통이 담긴 기억들은 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이런 기억들을 없앨 수는 없을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소망을 품고 살 것이다. 만약 기억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좋은 기억만을 남긴 채 웃으면서 살게 될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기억 지우기'가 소설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나노로봇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세상이다. 지울 뿐 아니라 원하는 기억 또한 심을 수 있으니 기억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다. 경제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과거의 기억을 심을 수도, 제거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수없이 기억을 조작한다.


중반부가 넘어서면서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닿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뜻을. 치히로처럼 불행한 과거를 가진 도카가 선택한 일이 결국에는 치히로와 그녀 자신을 돕는 일이 되었다는 것도 더불어 깨달았음은 물론이다. 잿빛 과거 속에 찬란한 빛을 심은 도카는 행복했을 것이다. 치히로가 그런 것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벅찼다.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작가가 삶에 대해,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겠구나 싶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 묻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저마다 고통스러운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따뜻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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