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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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친구를 만날 때면 너무나 반갑다. 쉬지 않고 이야기하며 웃기 바쁘다. 지나버린 시간이 점점 더 애틋해져서일까.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묘하게 대화가 어긋나기도 한다. 서로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다를 때다. 내가 말하거나 행동한 적이 없는데 구체적인 상황까지 제시하며 네가 그랬다고 말하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잘못 기억하는 건가 싶어 절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대의 기억은 정확할까. 혹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도 쉽게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수가 그랬다고 하면 그랬던 일이 되므로. 불과 몇 년 전 일도 헷갈리는데 중고등학생 시절, 더 거슬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내 뒤에서 누군가 영상을 계속 찍고 있지 않는 이상 말이다.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한 책은 많다. 전문서적은 물론이고 소설에서도 많이 다루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겪은 일을 정확히 기억한다면 아마 그런 내용은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일은 잊어버린다. 문제는 중요한 일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고를 당해 최근 2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주인공을 보면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해 보았다.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진, 언제 샀는지 모를 물건들을 보면서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2년 동안 새로 사귄 친구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 못 알아보거나 같이 일하게 된 거래처 직원을 처음 본 것처럼 대하게 된다고 가정하면 편하게 지낼 수 없을 것 같다. 기억 상실, 미행, 사고 등의 소재로 큰 그림을 그린 소설을 읽어 나갈수록 기억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모두가 똑같은 것을 기억하게 된다면 또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특정 기억을 삭제할 수 있게 된다면 할 것인지 생각하느라 바빠졌다. 기억이 없다면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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