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봤을 때는 여행 에세이인 줄 알았다. 요크셔가 브론테 자매의 고향이 있는 지방이라 관심이 있었는데 책 소개 글을 보니 반갑게도 소설이지 뭔가. 1920년, 여름, 벽화 복원가, 고고학자, 전쟁, 후유증 같은 단어가 마음에 들어와 냅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래전 이야기, 숨겨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이야기에 언제나 끌린다.옥스갓비 역에 내린 버킨이 쏟아지는 비를 맞는 첫 장면은 처량하다. 말더듬증과 안면 경련증이 있는 사내, 어수룩해 보이는 버킨이 목사의 냉대를 견디며 벽화를 복원할 수 있을지 잠깐 걱정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알고 보니 재치있는 사람이 아닌가.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데다 유머까지 있다니. 그에게 서서히 마음이 기울었다. 첫인상은 달라지게 마련이다.교회의 종루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은 한없이 아름답고 그곳 사람들은 순박하고 따뜻하다. 종루에서 작업만 하던 버킨은 사다리를 내려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진정한 평화를 느낀다. 벽에 켜켜이 쌓인 때를 벗기며 지옥 같았던 전쟁의 기억을 떨쳐내고 새 삶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옥스갓비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데다 아내의 배신에 상처까지 입은 인물이 낯선 곳에서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을 잔잔히 담은 소설을 읽으며 생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비극이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게 인생이지만 고난을 겪어 내고 다시 웃음을 지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 다정한 사람들과 어울린 시간은 생의 마지막까지 남을 추억이겠지. 왠지 아스라해지는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