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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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피해자 위주로 전개되는 다수의 범죄 소설과 달리 유족의 입장을 자세히 그려낸 소설이다. 강도에게 아이를 잃고 아픔을 이기지 못한 채 이혼한 나카하라가 십여 년 뒤에는 아내였던 사요코의 부고까지 듣게 되는 도입부를 읽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거듭 겪게 하는 저자의 의도가 궁금했다. 죄를 지은 자에게 형벌을 내린다면 어떤 형태여야 할까. 특히 살인자의 경우에는. 저자는 형벌이 온전한 속죄가 될 수 있느냐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대립되는 의견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반성 없이 덤덤하게 사형되는 범죄자를 본 변호사는 사형이 무력하다고 한다. 사형은 범죄자를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유족들은 반대의 입장이다. 살인범이 사형된다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으므로 사형은 꼭 필요한 제도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며 속죄하는 사람도 있으니 형벌만이 답이 아니라고도 한다.


저자는 영리하게도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형벌과 속죄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한 생명만 앗은 걸까. 남겨진 가족들이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은 없는 걸까. 살인자에게 십 년 정도의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 모범수라는 이유로 형기를 다 채우지도 않고 나오는 것은 옳은 일인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감형되는 것은 정당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여러 인물들이 각기 다른 상황에 서서 옳다고 느끼는 생각을 내보이는데 그중에서 딸을 잃고 사법제도를 고찰한 사요코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을 죽인 자의 반성이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할지라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죽은 자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서 범죄자를 용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죄를 지은 자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함은 자명하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됐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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