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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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뉴욕 명문대에 입학한 조지는 앤과 기숙사 룸메이트가 된다. 폭력과 가난 속에서 살았던 조지는 부유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앤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공통점을 찾고 금세 친해진다. 체코에 자유화 바람이 불고 로버트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된 해, 반전 운동과 평화 시위가 일어난 그 해를 넘기며 그들은 급격히 변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린다.

자신이 속한 상류층을 몸서리치게 증오하는 앤이 학생운동을 하며 조지도 급진주의자로 변화시키려 하지만 그는 동참하지 않는다. 비참한 생활을 해보지 못한 부유한 백인이 부모를 적대시하며 가난한 이들과 흑인들을 동경하다니. 더구나 부모에게서 다정한 손길을 받은 적 없는 조지가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부모를 경멸하는 앤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하겠는가.

나이가 든 뒤에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지 않으려면 자기 삶을 최대한으로 살아봐야 한다던 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학교에서 겉돌았던 조지도 혼란스러운 학교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곳을 떠난다. 이후 두 사람은 앤의 흑인 애인 이야기를 하다 싸우면서 멀어지지만 조지의 마음은 여전히 앤에게로 향한다. 어느날 경찰 살인범으로 신문에 등장한 앤을 본 뒤 그 가족과 얽히게 된 조지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40년이 지난 뒤 조지가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똑똑하고 열정이 넘치며 자유와 평등이 도래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앤과 그를 동경하지만 어두운 현실을 잘 알기에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조지의 삶을 함께 다룬다. 짧은 시간 나눈 우정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도. 변화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자가 바라보는 혼돈의 시대는 이상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느껴진달까.

조지가 <미들 마치>를 읽으며 '자신을 넘어선 삶에 대한 황홀한 의식'을 지닌 성녀 테레사와 자신의 친구 앤을 동류라 여기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300년 전에 살았던 테레사가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아니라는 문장에 울컥하는 조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 <위대한 개츠비>를 비판한 대학 시절 리포트를 보며 다시 앤을 떠올린다. 10대에 만든 이상을 좇으며 열정적으로 살았던 앤이 개츠비와 겹쳐 보여서다.

분위기에 편승해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이어갈 때, 확고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평생 실행한 앤은 행복했을까. 그랬으리라 믿고 싶다. 자신과 너무 달랐지만 이해하고 싶었던 앤,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는 앤이 생각날 때마다 조지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릴 것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이야기하던 둘만의 시간,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아득해진 그들만의 친밀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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