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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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는 사람이 친구가 되는 데에는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야기가 잘 통해, 전에 이런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만큼 누군가와 친해진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문제는 영혼의 단짝이라 느껴 늘 함께 어울리다가 처음의 감정이 식어 멀어지는 경우이지 친해져 행복한 순간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인 '나'와 빌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주인공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나'의 작품이 날카로운 말로 난도질당하는 순간에 구원으로 다가온 빌리! 곤혹스러워 사라지고 싶은 순간에 유일하게 자신을 옹호하는 빌리에게 관심이 생긴 '나'는 대화를 할수록 마음에 드는 빌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맨해튼의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형편이 어려운 빌리에게 남는 방을 제공하고 석사과정이 끝나 함께 작가가 될 미래를 그린다. 살아온 환경,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끝까지 잘 지낼 수 있을까.

젊을 때 만나 노년까지 우정을 지키며 사는 '나'와 빌리의 모습을 잠깐 상상하기도 했으나 사소한 일이 쌓여 오해도 그만큼 느는 것을 보고 행복한 결말은 아닐 거라 짐작했다. 1990년대에 사회가 제시하는 남성상과 거리가 멀었던 '나'와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빌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작가를 꿈꾸지만 재능이 없어 괴로운 주인공에게 이론적인 지식은 전혀 없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벌써부터 훌륭한 글을 쓰는 빌리는 질투조차 나지 않는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없는 걸 가진 사람이 자신의 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는 '나'의 마음은 빌리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고 심각한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이 소설은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므로 그가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은 알 도리가 없다. 숨길 의도는 없었겠으나 관계가 정리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나'의 진심에 조금 놀랐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게 두렵다고 고백한 그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빌리이길 얼마나 바랐을까.


주인공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결말은 다르게 흘러갔을 듯하다. 빌리에게 끌리는 마음이야 생겼겠지만 마음 나눌 친구는 여럿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이라는 가정은 허망하지만 왜 이렇게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돌이킬 수 없는 옛일을 가끔씩 떠올릴 때 찾아올 아픔을 알아서일까. 마지막 문장을 보고 '나'와 빌리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즐겨 찾던 술집으로 향하는 부분을 찾아서 다시 읽었다. 빌리를 이끌던 '나'와, 기꺼이 함께 가던 빌리. 주위 남자들과 다른 성격 탓에 위축된 '나'와 내세울 게 없는 동네 출신이라는 이유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빌리는 어쩐지 비슷해 보였다. 술집에서 만난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며 건넨 빌리의 말이 마지막 장면과 겹쳐지며 여운을 남긴다. 그래, 간절히 꿈꿨던 일을 포기하고 산다고 해서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닐 테다. 지금 여기서 삶을 꾸리고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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