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데서 오기도 한다. 불안을 견딜 수 없어 앞으로는 모든 일을 긍정하며 좋은 것만 떠올리자 다짐해도 지금껏 해온 생각은 사라지지 않기에 마음은 계속 지옥을 헤맨다.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하면서도 치받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메이는 한국을 떠나 인도까지 와서도 습관처럼 따라붙는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폭식증과 우울감에 시달리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먼 길을 떠났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마음에 괴롭기만 한 메이. 떠난다고 해서 생각대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만 새삼 확인할 뿐이다. 불합리한 카스트 제도에 순응하며 사는 인도인들을 보며 그들의 무지함에 화를 내다가도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릴 방법을 모르는 자신이야말로 무지한 게 아닌가 자문하는 모습이 어쩐지 슬프게 다가왔다.


인도에서 알게 된 케이가 떠난 후 그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메이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이 조금도 충족되지 못할 때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 그 참을 수 없는 허기짐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따위를.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 이중적인 모습으로 마음을 난도질한 연인이 마음에 새긴 상처가 깊고도 깊다. 다정한 손길, 따스한 말 한마디에 열리는 마음이건만.


소설의 처음과 끝에는 차문디 언덕이 있다. 도시는 사람과 탈것, 동물이 엉켜 혼잡하지만 언덕에 오르면 사방이 조용하다. 멀리 보이는 도시는 아름답고 저물녘 물드는 하늘은 마음을 적신다. 천 개가 넘는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메이가 본 것들은 삶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떠올라 그녀를 다독일 것이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은 없어진다고,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외면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던 그녀가 한결 편안해 보여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