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길
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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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집이 없다면 느낌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나만의 장소가 사라진다면 혼란스러울 것 같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기만 했는데도 까마득한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 불안해지다니. 집은 생각보다 내게 더 가치 있는 곳인 듯하다. 이 책에는 모든 것을 잃고 그저 걷기만 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몇십 년 동안 가꾼 농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은 레이너와 남편 모스는 희망을 찾아 걷기로 했는데 이들을 바라보며 그 길이 결코 평탄치 않겠구나 싶었다. 친구에게 배신당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 순간,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일주일, 한 달 동안 떠나는 게 아니라 기약 없이 걷는 여정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레이너 부부가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살갗은 빨갛게 변하다가 갈색이 되고 주름은 늘어간다. 다리는 붉게 부풀어 오르고 온몸은 피곤하다. 볼품없는 음식을 먹는 일이 반복되니 치즈와 토마토가 들어간 평범한 샌드위치는 천상의 맛으로 느껴지고 아름다운 풍경은 그저 그런 일상이 된다. 추위와 더위를 고스란히 안고 터벅터벅 걷는 이들은 그래도 서로가 있어 다행이었지 싶다. 심각한 병을 안고 있는 모스에게 레이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에게 꺼지지 않는 사랑이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 방랑길이 끝없이 계속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책을 읽을수록 어디로 흐를지 모를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끝나지 않는 길이란 없다고, 희망을 이길 절망 또한 없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글이 아닌가 싶다. 어느 밤,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중얼거리던 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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