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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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한 불빛이 거리를 수놓는 1940년의 뉴욕, 지루하기만 한 비비안 모리스의 삶은 전에 없던 활기로 가득 찬다. 조용한 마을에서 온 비비안의 눈에는 별천지가 따로 없다. 비비안은 고모인 페그가 운영하는 극장에 짐을 풀고 갑작스레 닥친 자유를 신나게 만끽한다. 열정적이고 제멋대로인 배우와 작가, 쇼걸들을 만나 이들의 자유분방함을 그대로 받아들인 열아홉 소녀는 자신이 몰랐던 밤의 세계에 삽시간에 녹아들며 술과 담배,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때까지. 이 소설은 아흔을 바라보는 비비안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활기찬 뉴욕에 발을 디딘 소녀가 위기에 빠진 뒤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찬찬히 그려나가는데 그 시절을 관통하는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놓아서 그 시대를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화려한 삶도 잠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뒤에 삶을 보전하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시기를 거쳐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찾아 평생을 보낸 비비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평생 잊지 못할 사랑까지 간직하게 된 그녀에게 듣는 이야기는 밝으면서도 슬프고 아름답지만 쓸쓸했다. 대개 모든 이의 삶이 그렇듯이. 그녀가 말한 것처럼 살면서 '비밀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상처'를 안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은 계속된다. 지나간 일은 뒤로하고 또 하루를 살아가야만 한다. 전쟁에 휩쓸린 모두가 처참한 기억을 안고도 사회를 재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이어나갔듯이. 여든, 아흔, 그보다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인생을 돌아보면 무엇이 떠오를까. 그 모든 힘듦 속에서도 값진 기억이 있었노라고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겠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더 좋겠지. 젊을 때의 실수를 인정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조용히 나이 들고 싶다. 비비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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