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텍스트T 2
정연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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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은 겸이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 엄마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이다. 늘 마음을 억누르며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다. 밖으로만 돌던 아빠는 엄마가 죽은 후에야 겸이와 살기 시작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원망뿐이다. 필요할 때 자리에 없었던 사람, 암 투병하는 엄마의 곁도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사람이 이제 와서 아빠 노릇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 화가 난다. 엄마와 쌓은 추억이 가득한 집을 뒤로하고 아빠의 고향에서 살게 된 겸이는 너무나 외롭다. 마을에 있는 숲에서만 마음이 편해지는 아이는 계속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게 될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은 소년이 서서히 회복되는 모습에 눈물이 맺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손에 넣은 시집을 읽으며 점점 시에 빠져드는 겸이에게 왜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던지. 중간중간 나오는 시는 아이의 마음을 흔들고 울게 하고 찌꺼기를 배출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여러 시를 보며 엄마 생각을 했다. 겸이가 그랬던 것처럼. 시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겸이가 대견했다. 울창한 숲에 매료된 아이가 숨을 쉬게 한다는 의미로 숲에 숨숲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때는 언젠가 가슴이 평온해지겠구나 싶기도 했고.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책을 덮고 나니 톨스토이가 쓴 작품 제목이 절로 떠오른다. 많고 많은 것 중에 결국은 사랑이겠지. 소년은 엄마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 것이다. 한없는 사랑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생을 고비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된 아이는 그의 행동을 금방 용서하지는 못할지라도 서서히 대화를 할 정도로는 지낼 수 있을 거라 짐작한다. 아픔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까지 아프게 해서야 될까. 자신의 아픔이 너무 커 가족의 아픔을 들여다볼 생각을 못 했다는 아빠의 고백은 그래서 비겁하게 들렸다. 아내를 잃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자각한 그는 이제서야 어른이 될 듯하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기에 현재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잊지 말았으면 한다. 겸이의 아픔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더 이상 상처를 주는 존재는 되지 않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잃어버린 말을 나눌 부자의 모습도, 활력을 내뿜으며 손을 내민 은혜와 끈끈한 우정을 나눌 겸이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마음속 단단한 껍질을 깬 아이가 날개를 펼쳐 날아갈 곳은 어디일까. 그곳이 어디든 이제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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