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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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불쾌한 인물을 많이 만났다. 도무지 정감 가지 않는 사람들이 상처를 주고받는다. 누구는 일방적으로 상대를 힘들게 하고 누구는 소심하게 반격한다. 어떤 이는 자신은 돌보지 않은 채 상대에게 모든 걸 내어준다. 각 소설에는 다양한 관계가 나오지만 중심이 되는 관계는 가족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무겁다.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도 갈등이 생기는데 이토록 상처를 내지 못해 안달한다면 마음이 남아날 수 있을까. 술만 마시면 괴물이 되는 아빠, 엄마를 때리는 아빠, 자녀를 방치하는 엄마, 사고만 치는 오빠, 장남에게 목매는 엄마, 오빠에게 생활비를 의지하는 동생, 딸에게 집안의 어려움을 떠넘기는 엄마, 돈이 생기는 족족 가족에게 가져다주는 가난한 딸이 각 소설에 골고루 등장한다. 가족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이 나뉘는데 꼭 한 명은 희생양이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 모든 고난을 짊어지게 되는데 남이 보면 답답하다 할 만하지만 본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다. 내가 아니면 부모가, 형제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소설인 <잘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범죄를 저질러 놓고 뻔뻔하게 행동하는 세호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불안하면서도 친구에게 휘둘리는 '나'의 우유부단함에 속이 탔다.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은 쉽게 이용당한다. 이런 이에게는 좋은 마음으로든 나쁜 마음으로든 부탁하는 사람이 계속 생기게 마련인데 당사자는 자신의 일상이 힘들어지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해 버티기만 한다. <그믐밤 세 남자>에 나오는 '나'의 아버지가 그런 인물이었고 '나' 또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만만한 사람 취급을 받을 만큼 순하다. 사람이 좋다는 말은 이제 칭찬이라고 볼 수 없을 듯하다. '만만하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의 아내는 남편에게는 강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가족에게는 만만한 사람이었고 <엄 대리>의 주인공인 엄 대리 또한 그랬다. 결혼을 하고도 벗어날 수 없는 돌봄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가족이니까'라는 말의 무거움, 아니 무서움을 잘 드러낸 이야기들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마냥 어둡게만 끝나지 않아 다행이라 해야 할까. 희미한 희망을 보이는 이야기가 몇 편 있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싶다.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집은 각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불혹에 작가가 되었다는 저자의 글솜씨가 대단하다 싶다. 다음에는 조금은 더 밝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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