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의 소설 문득 시리즈 4
김유정 지음 / 스피리투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어 시간에 배웠던 <봄봄>, <동백꽃>을 다시 보니 새롭다. 데릴사위가 되려고 들어와 놓고는 죽어라 일만 하는 어수룩한 청년과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뜬 소녀와 눈치 없는 소년은 언제 봐도 정겹다. 김유정은 처참한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이런 글을 써냈을까. 나라는 잃었어도 산에는 꽃이 피고 사람들은 일상을 이어가던 시절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다니. 마을마다 다른 분위기와 말투를 살려내고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솜씨를 누가 이만큼 따라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저 행복하게만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이 시대는 그리 살기 좋은 때가 아니었다. 소설집에 실린 몇몇의 단편에는 일제 시대의 상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헐벗고 굶주린 농민들의 처참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지도 못해 냉방에서 몸을 움츠리고 잠을 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지주가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면 거의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소작농들의 처지나 갈수록 빚만 쌓여 어쩔 수 없이 부부가 헤어져 살길을 도모하는 곤궁한 삶이 퍽 애처롭다.


김유정은 2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작가로 생활한 5년 동안 수필, 편지, 번역 소설, 소설을 합해 50여 편이나 되는 작품을 썼으니 잠잘 시간이나 있었을까. 일찍 세상을 뜰 걸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이 책에는 단편 8편이 실렸는데 '원래는 사람이 떡을 먹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떡이 사람을 먹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모른다. 끼니를 챙길 때보다 거를 때가 많은 어린아이가 어쩌다 부잣집에 가서 떡을 먹다가 사경을 헤매는 모습이 딱하다. 빈속에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밥과 국과 떡을 보면서 말릴 생각은 않고 옆에서 부추기며 재미를 느끼는 어른들은 죄책감이 없는 듯하다. 이들은 어쩜 이렇게 아이를 하찮게 여기는지. 그 시절 아이를 대하는 시선이 어땠는지는 이 소설집만 읽어도 알 수가 있다. 아이가 배가 고파 우는데 시끄럽다고 때리는 사람도 있고 입 하나 덜 목적에 다른 집에 식모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랐던 시절이구나 새삼 느낀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근근이 연명하던 사람들이 아이를 다정하게 대할 여력이 없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매기다니. 가장 약한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이들은 몰랐을 테다. 어쩐지 계속 애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