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새움 세계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음, 여지희 옮김 / 새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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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기만의 방>을 읽고 또 감탄했다. 여성들을 장식품 취급하던 시대에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이며 자유의지가 있음을 전적으로 드러낸 글은 지금의 사회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적은 돈을 벌던 여성들이 경제력을 가진 남성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던 옛날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소득 수준은 차이가 나고 육아와 살림은 거의 여성의 몫이다. 살림하는 엄마는 많지만 살림하는 아빠는 거의 없다. 수입 면에서 남성이 집에 있는 것보다 여성이 집에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홀로 서려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넉넉한 돈이, 직업이 필요하다. 미혼뿐 아니라 기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한 것은 이뿐일까. 여성은 모성을 품은 존재로 다정하고 가정적이며 직장보다는 가정에서 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 나오는 한 부분이 이를 잘 드러낸다. 인간적이고 겸손하다 여겼던 한 남성이 여성 운동가인 레베카 웨스트의 글을 읽고 '악명 높은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때 버지니아 울프는 놀람을 금치 못한다. 다른 남성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조차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모든 남성이 비슷하리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덩달아 놀랐는데 그가 '진실일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자신한테 있다고 믿었던 권력을 침해당한 데 대한 저항'으로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이 현재와 전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지 2백 년이 지났는데 고착화된 생각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에 들어온 권력을 놓기가 그토록이나 겁이 나는 것일까.

요 몇 년간 여성들의 현실을 아주 사실감 넘치게 전달하는 책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책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들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나오고 얼마 안 되어 논란의 중심이 됐었다. 현실을 과장해서 그렸고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며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설을 정말 공감하며 읽었기에 논란이 된 이유를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를 썼을 뿐인데 어째서 비난을 받아야 하며 불편한 사람은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궁금했다. 여성들이 힘든 것은 남성 때문이라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는데 무엇이 남녀를 가른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가부장제에 눌린 여성들의 처지를 조금씩 개선해나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성별 구분 없이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일까. 예부터 전해온 사상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님을 아는 지성인들이 이런 문제로 편을 가르고 비난하는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입으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을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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