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5
이영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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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지구에 사는 인간들과 인간이 아닌 종들이 대치하는 세계가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요정과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소녀, 시하가 특히 더. 기껏 요정을 잡아 놓고 고작 먹을 것을 요구하는 소박함과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을 걸고 용과 거래하는 대범함,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드는 결단력까지 뭐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었다. 온통 오염된 지구에서 요정의 능력을 빌어 식량을 구하려던 시하가 어쩌다 인류의 미래까지 짊어지게 되는지 그야말로 정신없이 진행되었는데 끝부분에 보이는 희망에 마음이 놓였다. 금방 깨끗한 상태로 돌아갈 리 없는 상태지만 그래도 절망하기보다는 조금씩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해서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문명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만 했지 이 소설에서처럼 문학이 사라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시와 노래가 존재하지 않는 땅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가 담긴 문학은 보물이 되어 이를 차지하려는 혈투가 난무하게 될 수도 있겠다. 소설 속에서 거대한 용, 헨리가 시와 노래를 가르치고 암송을 시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어버리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구가 멸망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또 다시 죽어나가는 상황이라니. 헨리가 문학을 독식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이를 내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책이 이토록 많이 있음에 안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의 시와 노래를 배우다가 한 단어가 틀렸다는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인간들과 환상 속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가 있다면 이처럼 처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처지만 생각한 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서 누군가가 결국 이겨본들 모든 것이 파괴된 뒤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환상 속에 존재하는 요정과 용 등이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공존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세상에서 사람과 자연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넌지시 일러주는 책이 아닌가 한다. 이영도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는데 특색 있는 생명체들이 인상에 남는다.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지만 인간과 이종족의 전투에 관여하지 않던 용은 다른 작품에서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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