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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의 섬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나온 단편과 중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가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실제로 읽어본 건 처음이다. '현세는 꿈이며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고 했던 저자는 음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글을 가득 채워 놓았다. 추리 소설이지만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일의 진행 상황을 따라가는 방식이라 트릭을 밝혀내지 못해 속상할 일은 없다. 책을 읽으며 일본 초기의 추리소설이 어떤 형식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고 그다지 밝지 않았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해보았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계획을 세우고 살인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후키야, 사는 게 지겹기만 하다가 살인을 한 뒤로 생의 즐거움을 느끼는 사부로,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 꿈꾸던 세계를 실현하려는 히로스케, 세상의 아름다움을 수집하며 인간을 박제하는 여도둑 등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이들은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없는 모습으로 읽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데 어쩌면 잠재의식 깊숙한 곳에 숨어 있을지 모를 어둠을 괜히 의식하게 하기도 한다.
작품 들에는 명민한 탐정이 등장한다. 앞에 실린 세 작품은 다소 정적인데 비해 마지막에 실린 '검은 도마뱀'은 앞선 작품들과 달리 쫓고 쫓기는 과정이 있어 긴박감이 넘친다. 명민한 탐정과 괴도가 머리싸움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대결을 펼치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생겨나는데 애증이라고 할 만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의 악행을 지켜보면서도 애정이 생길 수 있는지 심히 궁금해졌다. 이들이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들의 관계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악인을 창조하면서도 그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은 듯하다. 할 수 있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들이 결국에는 파멸의 길을 걷는 것을 방조한다. 소설 속에 환상의 세계를 보이면서도 인간 세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식의 방증일까. 어쨌든 우리는 스스로 떠올리기 힘든 환상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어둡고도 기묘한 이야기 속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 환한 일상이 더없이 귀중하게 느껴질 테니까.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