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작품은 접해보지 못한 작가들이 많다. 유명한지만 왠지 어려운 글을 쓸 것 같다는 고정관념이 생겨 선뜻 그들의 작품에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다른 사람들을 평을 보고 은연중 생기기도 하는데 우연히 손에 닿은 책 한 권 덕에 스르르 사라지기도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한 내게는 거리감이 있는 작가였다. <설국>의 첫 문장만 빼면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인데 허연 시인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스스로 작품을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현혹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에 관심이 많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삶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되어 주었다.

가까운 가족을 어린 시절에 모두 잃은 한 사람이 밝고 쾌활하게 자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슬픔에 잠긴 아이가 위로 없이 어른이 되어 극한의 허무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줄거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선명한 결론도 제시하지 않는 그는 초연한 태도로 삶을 묘사한다. 다른 이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고 다른 이들과 섞이지도 않으려 했던 고독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삶에 집착하지 않고 저 먼 곳을 바라보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결국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만족했을까. 노벨상을 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은 그때, 모든 것을 버린 그의 마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체념을 체화한 그가 추구한 궁극의 미가 '허무'에 있었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품을 보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작가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웬만한 관심이 없다면 시도하기조차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허연 시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분석하려 하지 않고 대화하고자 했다. 그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태어난 집과 종종 들르던 서점, 여행지에서 묵었던 료칸에서 그의 모습을 좇았다. 고독한 사람의 초연한 모습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세세히 그려져 있어 그 여정을 함께 하고 싶어진다. 세밀함과 허무가 짙게 깔린 일본 소설의 세계 속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단연코 돋보였다고 하니 그의 작품 속에 얼마나 깊이 허무가 배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보려고 <설국>을 구입했다. 이 세상에 없는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느낄 수 있을까. 여러 번 읽어 너덜너덜해졌다는 작가의 <설국>이 내게도 그렇게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