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살다 보면 때때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생긴다. 부끄러움, 수치심, 슬픔, 고통이 담긴 기억들은 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서서히 마음을 갉아먹는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이런 기억들을 없앨 수는 없을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소망을 품고 살 것이다. 만약 실제로 기억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천국에서 살게 될까. 현실에서 이룰 수 없기에 상상만 하던 일이 소설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나노로봇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하는 기억 또한 심을 수 있으니 기억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다. 경제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과거의 기억을 심을 수도, 제거할 수도 있는 세상. 그곳의 사람들은 수없이 기억을 조작한다.

막연히, 기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수록 정말 그럴게 될까 회의가 들었다. 거짓 기억에 매달려 사느라 정작 현실의 삶은 피폐해지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서 이 같은 일도 중독이 될 수 있음을 생각조차 못 했구나 싶어 씁쓸해졌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아닐까. 한 가정을 들여다보면서 기억 조작의 부작용을 간접 경험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 상상의 자녀들에 대한 기억을 심고 그 속에 빠져 사는 치히로의 부모는 자신들이 낳은 아이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치히로는 그렇게 철저히 외롭게 컸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하고 자란다.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줄 수 없는 이로 컸음은 물론이다. 다들 가지고 있는 행복한 추억이 한 톨도 없는 인생 속에서 그가 한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의 기억 자체를 지워버리기로 결심하고 특정 시기의 기억을 지우는 나노로봇, 레테를 복용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의 애정 어린 손길, 미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이런 것들은 삶을 얼마나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가. 이 모든 것에서 배제된 아이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받을지 신경 쓰지 않는 어른이 비단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체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정서적인 학대가 한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치히로에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기억을 지우는 레테를 복용했음에도 도리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실제처럼 또렷해진 것. 친한 소꿉친구와의 행복한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그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기억이 사실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어느 날, 기억 속의 그녀를 만나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잘못 심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그녀가 실제로 존재하다니! 그녀는 누구일까. 도대체 이 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중반부가 넘어서면 제목의 의미를 깨달았다. '너의 이야기'의 뜻을. 치히로처럼 불행한 과거를 가진 그녀, 도카가 선택한 일이 결국에는 치히로와 그녀 자신을 돕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잿빛 과거 속에 찬란한 빛을 심은 도카는 행복했을 것이다. 치히로가 그런 것처럼. 너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벅찼다.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보면서 작가가 삶에 대해,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구나 싶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 묻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저마다 고통스러운 기억 사이사이 존재하는 따뜻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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