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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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곳에 가면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쉼 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 대신 사진 찍는 시간을 가진 뒤 곧장 이동하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일까. 그저 잠시 둘러보다 오기 위한 '관광'을 하기 위해서일까. 저자에 의하면 여행은 여행자가 낯선 장소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자연과 문화를 끌어안은 장소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 낯선 장소를 그저 '보기'위해 가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물론 관광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낯선 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생활양식과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며 마음속에 담아내는 '여행'을 하는 편이 그 시간을 더 깊이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뒷짐지고 선 채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살고 있구나 생각할 때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면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편안한 공간을 벗어나 일부러 낯섦을 체험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니만큼 세상에 같은 장소가 없다는 저자의 말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놓쳤던 수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언젠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갈 때, 갑자기 기차가 멈춰 서서 몇 시간 동안 무료하게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지체된 시간을 아까워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겠구나 싶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그냥 복도로 나가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다른 경험들에 귀 기울여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시간쯤 그냥 보내면 어떤가. 낯선 풍경을 질리도록 보면서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데. 일상에서 누리던 편리함과 쾌적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때, 아마도 나는 여행하는 과정에서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것들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여행은 한순간에 힘든 시간으로 변해 버릴 수밖에 없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고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겠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곳이 많았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바로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있는 천공의 바위 도시 에리체. 그곳에 올라 넘실대는 지중해의 물결과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밀밭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면을 마주할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이 풍경을 보고 자연환경과 맛있는 음식 문화가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구나 이해했던 저자처럼 지리 문화적 맥락을 더듬어보게 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풍광에 가슴이 탁 트일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싶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도시로 내려가 거리를 거닐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 나누고 시끌벅적한 시장을 찾아가야지. 앞으로 수줍음은 뒤로 밀어놓고 여행지와 그곳에 뿌리내린 사람들을 함께 바라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여행자로서, 관광보다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세상으로 나아가 그곳에 속한 모든 것을 생생히 느끼게 될 때, 여행은 무엇보다 즐거운 것으로 마음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지를 고르지만 말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하고자 하는 곳이 이루어진 역사, 여행지가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알 수 있는 문화와 지리적 특성,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 등은 그곳을 더욱 폭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이 더 즐거워질 듯하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알기 위해서는 타인과 다른 집단을 알아햐 한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는 나와 극명하게 ‘다른‘ 존재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여행을 떠나야 낯선 세계 속에 던져짐으로써 나와 다른 존재들을 마주할 수 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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