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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ㅣ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헤르만 헤세 지음, 박희정 그림, 서유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위즈덤하우스의 비주얼 클래식 시리즈는 딱딱한 이미지의 고전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분위기를 잘 살린 그림이 아름다운 자연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만든다. 한스가 이렇게 풍부한 표정을 짓는 인물이었던가. 예전에는 그저 평면적이었던 그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이 소설에는 헤르만 헤세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14세에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나온 헤르만 헤세는 그 시기의 학교 교육은 물론 학생들의 생활도 상세히 묘사해 놓았다. 120여 년 전 독일에서 배우던 과목, 공부 방법, 음식, 여가를 보내는 모습 등을 알 수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는 때가 그때가 아닌가 싶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 끊임없이 질문하는 어린아이들, 세상을 탐색하느라 온종일 움직이는 아이들에게서는 생명력이 넘친다. 성인들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가진 아이들은 모두 다른 기질을 발산하며 각자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개성을 빛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 달랐던 우리는 왜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걸까. 이는 라틴어 학교의 교장이 의무로 여겼던 생각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린 소년들의 힘과 욕구를 억제하고 국가가 인정하는 이상을 심어 주는 데 최선을 다하던 그, 무분별한 개혁가나 몽상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에 제거해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던 그의 생각이 구시대의 전유물로 남아 있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자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런 생각이 통용될 거라는 걸 예상이나 했을까.
모두의 기대에 떠밀려 앞으로만 나아가느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생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한스의 짧은 인생이 영화를 보듯 눈앞에 떠오른다. 청소년기를 지나온 우리는 물론, 지금 그 시기를 거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도 한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친구 한 명 사귈 수 없었던 라틴어 학교 시절뿐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틀 속에 가두다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던 신학교 시절에도 그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어른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던 어른들이 오히려 한스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삶의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만들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짧은 인생을 마감하던 그 순간, 한스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다만 너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게. 안 그러면 수레바퀴 아래 깔려 버리고 말 테니까.
- P156
혹사당한 망아지는 이제 길바닥에 쓰러져 더 이상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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