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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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 박완서의 <나목>을 읽고 생생한 문체에 푹 빠져버렸다. 그 뒤로 한동안 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경험을 녹여 낸 이야기들 속에는 온통 푸르렀던 자연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고 자연과 더불어 살던 사람들의 면면이 다채롭게 드러났다. 단편집을 읽으니 그때가 생각난다. 박완서라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괜히 기뻤었다. 뵌 적은 없지만 왠지 가까운 느낌도 들었었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그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었던 것도 같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70년대를 배경으로 결혼, 가족, 사랑, 자유 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책을 덮고 나면 '약간의 겁을 먹고 짚어낸 변화의 조짐이 지금 현실화된 것을 느낀다'는 작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다. 현재의 모습 속에서 몇십 년 전 그때의 모습을 본다. 시대가 변해도 되풀이되는 게 있다.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 이웃 간에 싹트는 정이 불러오는 따뜻함은 여전해 반가우면서도 삭막한 도시 생활로 메말라가는 사람들과 시대 착오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의 모습도 여전해 씁쓸하기도 하다. 상반된 감정을 느끼며 새삼 작가의 안목이란 예사롭지 않은 것이구나 감탄한다.

'마른 꽃잎의 추억'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가 특히 마음에 남는다. 이사하고도 6개월이 지나서야 전화기를 개통할 수 있었던 시대, 급한 일이 있으면 공중전화까지 달려가던 그 시절이 조금 생소하면서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살아서일까. 낭만과 추억 속에서 각 세대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대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놓인다.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가족과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표현력 있는 문체가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절로 외워지는 문장들을 이제 공책에 옮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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