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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커트 보니것의 소설은 처음이다. SF, 로맨스, 스릴러 등 여러 장르의 단편 소설을 엮은 이 책을 통해 그가 블랙 유머의 대가라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했다. 서문을 본 사람이라면 동의하리라 믿는다. 소설 스물다섯 편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성격에 웃기도 하고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생각하면 되는 것인지. 비극적인 가족사조차 유머로 풀어내는 입담을 가진 저자라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에 실린 25편 중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 자신의 비밀을 지키고자 막대한 유산 상속 사실을 숨기는 남자의 이야기인 <포스터의 포트폴리오>,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소심한 해리가 무대 위에서는 딴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이 신기했고 그런 그와 모든 면에서 잘 맞는 헬렌이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살든 각자에게는 삶의 방식이 따로 있으므로. <해리슨 버저론>을 읽고 충격을 받은 뒤라 그런지 그들의 행복에 기분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허버트의 비밀을 알아버린 포스터라는 인물도 정감이 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외칠 곳도 없으니 그는 계속 쓰린 마음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50년대, 60년대의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도 좋았고 미래 사회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도 놀라웠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유토피아는 바라지도 않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그런 식의 디스토피아는 부디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평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세상, 세계의 존립을 핑계삼아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소수의 세상은 너무도 암울하지 않은가. 우리의 미래는 그와는 다르기를. '물속에서 아름다운' 커트 보니것을 만나서 반가웠다. 이제 그의 장편 소설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