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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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무서운 영화를 보고 계속 악몽을 꾼 뒤로는 공포 영화나 공포 소설을 보지 않게 됐다. 이 책도 일본 호러소설 대상작이라고 해서 볼까말까 망설였는데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는 후기를 보고 용기를 내서 책장을 펼쳤다. 대낮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읽어서인지 어릴 때보다 대범해져서인지 이 정도면 읽을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숨도 쉴 수 없는 극한의 공포'라는 뒤표지의 문구만 아니었더라도 겁을 내지는 않았을 텐데. 어쨌거나 그 정도로 숨막히게 무섭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오래 무섭기는 했다.

이 책에는 이름을 부를 때 대답을 하면 그를 잡아간다는 보기왕이 나온다.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면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평범한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무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목표로 한 사람에게 다가가 친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니 무심결에 대답했다가 보기왕에게 잡혀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산에 잡혀가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를 안다면 누구라도 나와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생김새도 무시무시한 이 요괴는 부디 책 속에서만 존재하기를. 사실 보기왕도 보기왕이지만 이 요괴가 나타나게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오싹했다. 보기왕에 대한 전설이 중심축이 되어 삼대에 걸친 공포의 근원을 파헤쳐가는 전개를 따라가며, 사람의 마음 속에 슬며시 스며드는 두려움을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기왕은 아득한 과거를 헤치고 현재에 나타났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궁리해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보기왕의 술수가 예사롭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왜 이렇게도 쉽게 흔들릴까. 사람 사이의 마음을 잇는 끈은 흔들림이 심해질수록 마음에 상처를 내고야 만다. 보기왕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때다. 교묘하게 마음을 잠식하는 보기왕이 과연 책 속에서만 존재할까. 보기왕은 이미 그 이름을 달리해 우리 곁에 있다. 마음 속의 작은 틈을 파고들어 한순간에 마음을 장악하는 존재가 그것이다. 두려움에 질린 마음은 더 큰 두려움을 부르고 이는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약하면서도 이기적인 우리들의 마음에 온기가 없어질 때, 불안이라는 이름의 보기왕이 들이닥칠 것이다. 비극적인 모든 일은 작은 불안 한 덩어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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