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간혹 지나간 일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의미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타임머신을 한 번 떠올려보고, 환생을 믿지는 않지만 혹시나 다음 생에 다시 나 자신으로 태어난다면 이렇게 해보리라 다짐하는 것까지가 한 과정이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덧없는 생각으로 흘려보내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삶에 대해 후회하는 대신 반복되는 생을 사는 해리 오거스트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미래나 과거로 가거나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을 반복해서 살아가게 되는 인물을.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했는데 눈을 뜨니 갓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다면 어떨까. 아기의 몸에 어른의 정신이 깃든 희한한 존재,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상한 존재로 살아가려면 아마도 그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동안은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신체와 정신의 부조화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택하는 과정을 거치며 반복되는 생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해리를 보며 정상적인 사람의 정신으로는 대번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 짐작할 뿐이지만 말이다.

살아 있었던 때의 기억을 가진 채 다시 태어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일단 자신이 살던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꿰고 있으니 부를 축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역사적인 일에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큰 혼란 없이 아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매번 최선을 다해 살아나갈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선가는 찾아야 제대로 된 삶을 꾸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1919년을 15번 맞이하는 해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부를 축적하며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들까, 아무도 풀지 못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영웅이 되어 명예 속에 지내게 될까.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전개되지 않는다.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부자가 되거나 영웅이 되는 것은 한두 번의 생으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물론 상상하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니 너무 쉽게 단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열다섯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오거스트는 평범하게 살고 있지 못하다. 자신과 같은 존재가 세상에 더 있음을 알게 되고 그들과 엮이면서 대단히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며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알고 있는 미래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방관해야 할까. 이 문제는 가치관에 따라 극명하게 답이 갈릴 수 있으리라 본다.

예사롭지 않은 시작부터 의외의 결말까지 해리의 뒤를 정신없이 따라다녔다. 물리학 이론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녹여 낸 저자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해리, 그의 삶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연결되며 미래를 위해 해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어 SF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세상과 타인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해리의 선택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다시 태어나도 해리는 같은 선택을 하리라. 저자는 해리의 반복되는 삶, 확고한 그의 선택을 통해 삶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종교, 의학, 물리학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에게 닥친 생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해리를 떠올리며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더듬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