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터밀크 그래피티 - 양장, 음식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균의 미국 횡단기 ㅣ 에드워드 리 컬렉션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며 마음속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 있다.
분명, 읽은 것은 요리일텐데 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 기분. 맛본 것은 이야기일텐데 요리를 맛본 기분.
『버터밀크 크래비티』는 그런 책이다.
음식과 사람,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낱말들이 미국이라는 땅 위에서, 이균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조리되고, 써지고, 길어 올려진다는 것을 바라봤다. 책장을 넘길수록 느낀 건, 이 책이 단순한 요리를 설명하는 책이나, 에피소드만을 나열한 두꺼운 종이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음식을 빌려 자신을 설명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균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길, 그의 감정, 혼란, 성장의 흔적들이 한 플레이트와 한 음식마다 담겨 있다. 그가 거쳐 가는 지역마다 등장하는 음식들은 낯설지만서도, 동시에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들인데도 말이다.
이야기 속의 요리는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였고, 또한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미래를 계획하게 하는 힘이었다.
나는 특히 책 속에 툭툭 나오는 레시피들이 참 좋았다. 이것은 단순한 부록의 역할을 하는 페이지의 느낌이 아니라, '이균'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들이었다. 유명한 에드워드 리 말고, 진짜 '이균'이라는 사람 말이다. 요리법이라는 형식을 빌려 삶을 나누는 방식이, 어쩌면 가장 이균답지 않았을까 싶었다.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말로, 누군가는 춤으로,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또 누군가는 침묵으로도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해명하는 하루들을 보내곤 한다. 내가 느끼기에 이균에게 그 방법은 요리였던 것 같다.
그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을 보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어떻게 나를 말하고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일, 반복하게 되는 행위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나 역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참 좋아한다. 그 일이 좋다고도 말하지만, 그 일을 할 때의 내가 좋고 편안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나만의 통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균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음식은 그에게 언어였고, 위로였고, 방향이었다. 그 길 끝에서 그는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을 또렷이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 모습이 참 멋지다고 느낀다. 단순히 유명한 셰프가 되었다는 외형적인 성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 그의 여정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했던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 방식이 요리든, 글쓰기든, 사람을 만나는 일이든 모두 다 귀하고 의미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타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의 즐거움이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깃든 온도와 냄새, 분위기, 기억의 층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깊은지.
나는 ‘사람책’이라는 개념을 늘 기억하며 살아왔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접한 그 개념은, 한 사람의 삶이 한 권의 책이 되고,그 책을 내가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마음이라는 도서관에 아카이브 해 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이야기를 소중하게 저장하고, 때로는 글로 꺼내어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의 지향점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 기록이 음식일 수도, 사진일 수도, 노래일 수도 있다. 내게는 그것이 글이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그 사실을 더 깊이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릴르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에드워드 리처럼, 이런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책의 후반부에 나온 ‘블루스 거리의 키베’ 챕터가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한련 잎 김치를 곁들인 양배추 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새로운 정체성의 맛. 조화를 이루려는 작가의 마음. 그래서 나도, 조만간 꼭 그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 맛을 통해 이 책의 이야기를 다시 음미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내 삶의 요리를 정성스럽게 만들어내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