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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척 반가웠고 매우 놀랐다. <권력이동(Power Shift)>이란 책을 낸지 15년 만에 앨빈 토플러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나를 흥분시켰다. 또 77세의 나이에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라는 방대한 책을 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요점을 하나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추측건대 저자도 자신의 책 제목을 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고민하는 데 쏟았을 것같다. 그럼에도 저자는 '부(富)'란 단어를 끄집어낸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부는 단순히 '페라리 2대를 소유했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부란 욕망을 해소해주는 것이라는 게 앨빈 토플러의 시각이다. 따라서 부란 자동차나 돈일 수도 있으며 권력이나 지식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와 돈은 동의어가 아니다. 잘못된 인식이 만연되어 있기는 하지만 돈은 여러 가지 부의 증거 혹은 상징적인 표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때로 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 부의 미래를 가장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그 근원인 욕망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P37)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이회장은 "기업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면서 경제가 과거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표현했다. 이 같은 표현은 이 책에도 잘 나타나있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무용지식(Obsoledge)'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했다. 지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므로 어떤 시점에서 (지식을) 취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새로운 지식을 계속 확보해야 그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을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수한 정보가 인터넷 등을 통해 매우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가짜'가 아닌 '진짜' 정보를 어떻게 분별하느냐는 이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앨빈 토플러는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까지 표현하며 이를 구별해내는 능력이 미래의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또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 속도의 충돌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경제 발전의 속도를 사회 제도나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속 100마일'이란 표현으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속 100마일로 질주하는 자동차는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기관을 대변한다. 기업이나 사업체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들은 사회 다른 부분의 변혁을 주도한다. (중략) 마지막으로 느림보 중에서도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법이다."(P63)
그는 이 '속도' 이론의 시각을 넓혔다. 부가 지역적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이는 '공간' 이론과 결합한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지각변동'이라고 칭했다.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부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옮겨지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런 지각변동 속의 한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를 앨빈 토플러는 10페이지를 할애하면서까지 들춰냈다. 그는 한국이나 북한이 세계적인 '슈퍼파워(super-power)'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 세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쪽이 탄도미사일과 핵탄두 기술을 확보했을 때, 두 국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때문에 워싱턴과 북경에서부터 모스크바, 대만, 도쿄, 뉴델리에 이르는 국제 사회의 군사 및 외교 전문가, 언론인, 소설가, 정보기관 등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다양한 한반도 시나리오를 토해내고 있다. 이들 시나리오는 양 국가의 평화적 통일에서부터 전면적인 핵 전쟁까지 온갖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P491)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앨빈 토플러는 책에서 부를 강조하고 있다. 부란 지식이다. 또 어떤 지식이 '진짜'인지 가려내는 분별력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지식엔 속도가 있어 빠르게 이를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복합적인 부를 설명하기 위해 그의 1980년 저서 <제3의 물결(The Third Waves)>의 시나리오를 대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의 제1의 물결은 '노동'이며 제2의 물결은 '산업주의'다. 제3의 물결은 '지식'이며 현재 우리는 제3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으며 이 물결의 흐름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지식을 석유에 비유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래의 세계는 석유 전쟁을 벌일 것이고 이같은 징조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이 전쟁을 통해 중동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나 캐나다가 모래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것은 이젠 뉴스도 아니다. 일본 총리가 중앙아시아를 누비고 우리나라 대통령과 총리도 아프리카를 내 집 드나들듯 한다. 또 중국은 어떤가. 아예 현금 가방을 들고다닌다고 한다. 모두 석유를 구하기 위해서다. 또 각 나라가 태양열과 풍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 같은 현실적인 상황을 지식에 연결하고 지식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석유와 지식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보다 석유는 쓸수록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할수록 더 많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중략) 지식은 본질적으로 무한하다. 지식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변화들은 현실 세계의 부, 즉 '누가 어떻게 부를 손에 넣느냐'하는 문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P160)
이 책이 미래를 예언할 수 없다. 하지만 예측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앨빈 토플러는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확실한 자료가 없인 한 줄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치밀한 자료에 의존했다. 따라서 그 예측의 정확성을 매우 높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 때문에라도 지금 시각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각 국의 수뇌부와 경제인 등 '미래 결정자'들이 이 책의 방대함이나 앨빈 토플러의 명성에 끌려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은 어떤 측면에선 매우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겠지만 미래의 '답안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매우 악의적으로 본다면 이 책은 미래의 예언을 가장한 '사기(詐欺)'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앨빈 토플러의 집대성 노력에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