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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책 내용보다 작가에 끌리는 경우가 있다. 소설 <첫사랑 온천>을 쓴 요시다 슈이치가 그렇다. 그의 표현력은 섬세하다. 섬세한 표현력을 가진 일부 작가의 글은 복잡해지기 일수이다. 이 작가는 쉬운 표현력을 구사한다. 섬세하면서도 쉬운 표현을 글로 나타내는 작가이다.
이 작가는 사랑과 온천, 결코 교집합이 없어보이는 두 소재를 잘 엮었다. 사랑은 일상이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온천은 여행이다. 사랑을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반추하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1) 첫사랑 온천
한 남자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소위 먹는 장사로 성공한다. 아내와 온천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여행 전날 아내는 이혼을 선언한다. 2년 전부터 이혼을 생각했다면서… 야외 노천탕에서 아내는 남편을 떠난다. "복한 순간만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야"라는 말을 남기고…
2) 흰 눈 온천
결혼을 앞둔 커플이 온천 여행을 떠난다.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는 이 커플이 묵은 방의 옆방에는 전혀 말이 없는 커플이 있다. 말이 없어도 이들의 사랑은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3) 망설임의 온천
대학 동창과 불륜 관계인 주인공은 출장을 핑계로 1박2일 밀월 여행을 온천으로 떠난다. 한 여관에서 만나기로 한 대학동창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목욕을 할 요량으로 공동 온천탕으로 간다. 그가 온천탕 문앞에서 발견한 것은 공사중이라는 팻말이다. 40도를 넘는 살인적인 더위 등 이래저래 짜증이 난다. 죄책감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4)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영업 실적 1위 보험세일즈맨은 모처럼 아내와 온천여행을 계획한다. 여행 전날 아내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잘 먹고 살게 된 것은 자신이 뼈빠지게 일한 결과라는 남편과, 늘 쫓기듯 사는 삶은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는 아내, 이 둘은 괴로워한다.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한 남편은 혼자 온천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술을 마시면서도 보험 이야기만 꺼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구토한다.
5) 순정 온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녀 학생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온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노천탕에서 그들만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일부 독자나 비평가는 서로 다른 에피소드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혹자는 이야기 순서를 거꾸로 이어가면 사랑에서 이별하기까지 과정이 그려진다고 한다. 둔해서인지 나는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커플이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공통 소재인 온천도 그 지명이 제각각이다.
미국 TV드라마 <엑스 파일>처럼 호평과 혹평이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도 드물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무리가 어정쩡하다는 점이다. 공상과학 드라마이므로 명확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항상 '2%' 부족한 듯 끝난다. 이 책이 그렇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시점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첫 에피소드(첫사랑 온천)를 읽은 후에는 당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점차 적응해갔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저자의 독특함에 매료되었다. 물론 저자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덤이 있다. 다섯 에피소드마다 일본 다섯 지역 온천이 배경으로 깔린다. 일본 온천 지역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온천 문화도 접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책에 배경이 된 온천을 한번쯤 가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