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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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산자(古山子)>는 소설이다. 고산자는 김정호의 호다. 그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조선시대 지리학자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 제작한 한반도의 지도로, 1985년 대한민국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소설은 김정호의 일대기 중 일부를 추정한 책이다. 김정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가 지도를 만든 이유는 물론 전체 대동여지도 목판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그의 사망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대동여지도를 흥선대원군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조정은 국가 기밀을 누설한다는 죄목으로 각판을 불태우고 간행을 금지했다고 한다. 투옥된 김정호는 옥사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또 지도를 만드는 김정호가 전국을 일일이 답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 흩어져 있는 지도를 모아 집대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김종호라는 인물과 지도 제작은 의문 투성이이다. 사실 평민 신분인 김정호가 어떻게 밥벌이를 하면서 지도를 제작했는지조차 밝혀진 바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의문이 소설가 박범신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 소설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그런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측을 이 소설에 쏟아냈다. 이 소설은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에 나선 이유를 그의 아버지 사망과 관련지었다. 아버지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동사 또는 아사했는데, 이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지도가 잘못되었다는 설정이다. 소년 김정호에게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따르면 김정호의 지도 제작은 녹록하지 않았다. 현지를 답사하기 위해 압록강에 갔는데, 그 곳에서 청나라 군에 잡혀 첩자로 오인당했다. 그보다 조정도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지도를 국가 기밀로 여겼던 당시에 평민 출신인 김정호가 세밀한 지도를 제작해서 백성에게 나눠주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조정은 김정호를 청나라의 사주를 받아 지도를 제작한 첩자로 몰아붙인다.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럴듯한 추정을 내세웠다. 저자는 대동여지도가 목판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필사본이 아닌 목판본으로 제작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까지 빼놓지 않고 새겨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 지도는 상하좌우로 접는 분첩절첩식이다. 한마디로 큰 지도를 휴대하기 쉽도록 여러 조각으로 나누었다. 울릉도 옆에 독도를 그려 넣으려면 80리 간격의 절이 2~3개 더 필요해진다는 점을 한 가지 이유로 삼았다. 축척을 무시하면서까지 울릉도 옆에 바짝 붙여 독도를 그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둘러싼 의문을 어느 정도 해갈시켜준 셈이다. 의문에 대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우격다짐이 아니다. 어느 정도 과학적인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학이 아니더라도 통념상 '그랬을 것이다'라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답을 내놓았다.

 

독자가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속시원한 추측뿐만 아니라 김정호의 지도 제작에 대한 역경도 이 책에 그려져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그 기대에 미치지 않아 아쉽다. 김정호의 현지 답사나 지도 제작에 대한 내용이 부실하다. 내륙과 해안 지형을 어떻게 보았는지, 당시 불편한 이동수단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별말이 없다. 전라도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압록강 이야기가 나온다. 강원도나 충청도, 서울, 제주도, 울릉도를 어떻게 돌아다녔는지를 이 책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곁가지가 여럿이다. 조선 후기에 박해받던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는 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후반 상당부분을 장식한다. 또 김정호가 어릴 적 알게 된 또래의 비구니 스님에 대한 회상도 그려져 있다. 이런 설정들은 김정호의 지도 제작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김정호라는 인물의 주변을 그려냈다기 보다 책 내용을 산만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곁가지가 많으면 독자는 혼란스럽다. 

 

100년이 훨씬 넘는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동여지도는 정교하다. 100년이 훨씬 지난 현재, 김정호를 중심에 둔 이 책은 그때만큼 세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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