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모 항공사의 광고 카피다. 20세기 세계 최강대국 자리를 꿰찬 미국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미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항공사 광고가 이 사회에서 먹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인이 평생 동안 미국을 몇 번, 몇 개 도시를 가보겠는가? 미국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 <아메리카 기행>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오롯이 담겨있다. 저자 후지와라 신야는 캠핑카로 미국을 200일 동안 돌아다녔다. 2만km를 달리며 미국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표현했다. 제목에 기행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표지에는 한가로운 푸른 바다 사진이 있다. 언뜻 보면, 재미있는 로드무비와 같은 책이라고 기대하기 십상이다. 이 책은 마냥 편한 기행기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미국의 이면을 찾아내려는 시각이 날카롭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실망했다. 마치 독자가 미국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자는 처음부터 그런 기행을 기획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미대륙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 모습을 그렸다. 특히 그들의 모습에 배어있는 의미를 정조준했다. 한마디로 '인간군상 기행'이라고 하는 편이 이 책의 내용에 가깝다.
 
저자는 이 책 말미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미국을 돌아보고 자신의 뿌리를 생각했다고 했다. 사실 우리 삶에는 알게 모르게 '미국' 또는 '미국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도 매우 짙게 깔려 있다. 웬만해서는 느끼지 못할 정도다.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먹는 것부터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대신 시리얼로 식사를 때운다. 점심을 맥도널드 햄버거와 콜라로 해결하기도 한다. 저녁에는 스테이크를 먹는다. 언제부터인가 수정과보다 콜라가 익숙하다. 팝콘을 먹으면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데이트 코스는 특별하지도 않다.

 

단적인 예이지만, 먹고 즐기는 행위가 미국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햄버거는 미국인의 사고와 문화가 녹아있는 음식이다. 미국 역사 초창기 시절, 미국인은 자신들의 모국인 영국과 유럽처럼 고상한 삶을 영위할 여유가 없었다. 고기와 야채를 빵에 넣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총을 들고다녀야 할 정도로 미국인의 삶은 고단했다. 일본인 저자는 이런 삶을 우리(미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가 마냥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미국인은 요가, 붓글씨, 불교, 슬로우 푸드 등 동양적인 것에 심취하고 있다. 정작 동양인은 정크 푸드(junk food)로 대변되는 '미국식'을 마치 선진국 문물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생각해볼 대목이다. 영화 속에 비친 미국을 현실로 받아들이지고 있지 않는지, 짧은 유학이나 여행에서 각인된 미국이 허상은 아닌지 반추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미국은 성적으로 개방되고 자유분방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보수적인 가정이 적지 않다. 미국 상류층은 가문까지 따져 결혼 상대를 고른다. 여성에 대한 편견도 있으며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저자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느낀 인종차별을 예로 들었다. 자격지심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또 미국인처럼 친화적인 국민은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깨는 역할도 한다. 


 

동서양 문화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국을 결코 겉모양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미국은 현재 세계 강대국이지만 결코 세계 각국이 추종하는 모범국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본인 여행자는 미국인처럼 친화적인 국민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인상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미국인이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거나, 윙크를 하거나, 때로는 '하이'하고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행자를 기분 좋게 해주는 반응이다. (중략)
이런 과잉표현은 다민족의 이유로 성립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낯선 이들끼리 길에서 주고받는 간단한 인사처럼 과잉표현으로 상호 간에 가로놓여진 깊은 도랑을 메우려고 한다. 이는 미국에서 미국인이 만들어낸 고유의 '규칙'이자 '응원'이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을 허상이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에 퍼뜨린 상품과 문화를 예로 들었다. 코카콜라는 합성 음료일 뿐이고 금주국이었던 미국이 발명한 와인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 어린이의 영웅이 된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은 쥐와 집오리의 모조품이며, 디즈니랜드도 잡다한 세계를 가짜로 꾸민 이미테이션(공상)의 나라라고 비판했다. 미국 영화에도 공상과 페이크(속임수)가 난무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예술인 팝아트도 가상현실이 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 허상의 역사를 써오고 세계에 이를 전파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미국의 다민족 구성원에게서 찾았다. 다민족이 모인 미국인은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환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7개월간의 여행을 마치면서 미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내 안의 또 다른 뿌리를 그곳에서 확인했다"는 말로 이 책을 마무리했다. 책 <아메리카 기행>은 미국을 불편하게 하거나 '아메리카 드림'을 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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