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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미군이 이런 말을 했다. 일본군이 자신에게 검은 종이를 먹였다고 했다. 검은 종이는 김이었다. 그만큼 일본을 몰랐다.
미국은 일본을 파악해야 했다. 전쟁기간 동안 일본군이 보여준 행동은 미군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이해불가’였다. 일본군은 왕이 하사한 술을 마신 후 비행기를 몰아 미군 전함으로 돌진했다. 포로로 잡힌 일본 장교는 스스로 배를 갈랐다. 미국 국무부는 1944년 인류학 전문가인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 연구를 의뢰했다. 그 연구결과가 책으로 엮였는데 바로 <국화와 칼>이다.
이 책이 세상이 나온 배경은 이렇게 무섭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력만 따지면 미국이 일본을 이기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무기나 병력면에서 미국에 뒤졌지만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을 공격했다. 일본에는 총칼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미국은 그 무엇을 알아야 했다.
그 내용이 이 책에 적혀 있다. 저자는 각종 서적과 미국 내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했다.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조목조목 파헤쳤다. 예컨대, 다른 집으로 보내버린다며 으름장을 놓아 아이를 길들이는 일본의 육아법까지 저자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1940년대에 이 정도로 연구했다는 점이 놀랍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이 일본을 누르고 세계 강국이 된 배경에는 이 연구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물론 당시에는 미국이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제압했다.
이 책에는 맹점이 있다. 저자는 일본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일본에 대해 편견 없는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생긴다. 한 번도 한국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은 외국인이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의 장엄(莊嚴)을 느낄 수 있을까.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하루 종일 쪼그린 채 장사하는 할머니의 주름살이 깊게 패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할머니가 질긴 반찬을 씹어서 손자에게 먹이는 정(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수박의 겉만 핥았다고 볼 수 있다. 수박 속은 빨갛다는 것을 알겠지만 왜 씨 없는 수박이 필요한지 모를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 책은 1940년대의 일본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약 70년이 지난 현재의 일본과는 다를 수 있다. 일본문화와 일본인이 변했다. 이 책에는 일본인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키우는 데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물론 지금은 남녀 차별을 두고 아이들을 키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와 달리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그 옛날이 있다. 역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을 이해하는데 시간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현재의 일본을 파헤친 ‘제2의 국화와 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은 후 독자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책 겉장을 다시 한 번 훑어보는 행동이다. 다음에 또 한 번 읽기 위해 눈에 익혀두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책을 책장에 꽂는 행동이다. 중간에 포기하기 싫어 끝까지 읽었을 뿐 애정이 담기지 않은 것이다. 책 <국화와 칼>은 전자이다.
일본 황실의 상징인 국화는 평화를 의미한다. 칼은 전쟁을 의미한다. 이는 두 얼굴을 가진 일본을 대표한다. 겉으로는 웃지만 무서운 얼굴이 속에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이중성을 이해하는 데 이 책만큼 도움을 주는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