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1
이현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몇십 년 만에 자신이 살던 곳을 찾아보면 느낌이 있다. 당시에는 그렇게 넓게 느껴졌던 마당은 손바닥 만하게 보인다. 내 키만하던 묘목이 지붕보다 높다. 흙 골목길은 사라지고 자동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이 생겼다. 앞에 있는 구멍가게는 대형 찜질방으로 변했다. 개천은 복개되어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처럼 도시는 세월과 비례해서 변한다. 변하지 않으면 죽은 도시이다. 산 도시는 변한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는 그 속도가 빠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이 그랬고 한국의 수도 서울이 그렇다. 수백 년 동안 서울은 천지개벽 했다. 그렇다고 조선의 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의 서울에 있는 지명 중 상당수가 조선시대에도 사용했던 것이고 당시 만들어진 길을 지금 우리가 걷는다.

 

과거에 내가 살던 집이나 학교를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충동을 느낀다. 서울에 살지만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싶다. 한양과 서울은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책이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다리가 아파온다. 저자 이현군을 따라 서울을 한바퀴 돌아본 느낌이다. 인왕산에서부터 서대문을 돌아 남산, 다시 동대문으로 돌아 북악산까지 도성을 따라 답사한 것 같다. 그것도 저자의 자세한 설명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지도를 들고 지금의 서울을 돌아볼 수 있을까? 재미있는 발상이다. 서울에는 도성이 있었다. 사대문을 기점으로 18.2km 둘러싼 도성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도성을 따라 걸으면 옛날 지도로도 서울을 둘러볼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를 타임머신에 태우고 조선시대로 안내한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의 서울 모습을 비교해가면서 살펴보길 권한다. 그래서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자칫 조선시대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독자는 이해도 안 되고 심지어 따분해진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다. 조선시대 6조 거리를 상상하다고 느닷없이 교모문고가 등장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오버랩시켜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궁궐과 종로 답사, 청계천 답사, 도성 답사, 성문 밖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책의 노른자위는 도성 답사 부분이다. 조선시대 서울 즉 한양은 도성 안과 밖이 전혀 다른 모습을 가졌다. 한눈에 당시 서울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도성 따라가기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궁의 위치와 쓰임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종로로 대변되는 한양의 길을 이해하고 청계천으로 대표되는 한양의 물길을 알아야 한다. 또 도성 안팎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아~ 그렇구나." 너무 모르고 살았던 서울을 알게 된다. (무식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청계천의 어원이 청풍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청계천은 청풍계와 내 천(川)이 합쳐진 이름이다. 경복궁 서쪽에 청풍계라는 계곡이 있었다. 청풍계는 근처에 있는 백운동과 함께 조선시대 명승지였다. 그곳에서 시작된 냇물이 지금의 청계천을 타고 동쪽으로 흘렀다.

또 교보빌딩 동쪽 출입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종각 방향으로 걸어가면 혜정교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곳은 탐관오리를 공개 처형한 곳이라고 한다. 도성의 한복판이니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서 공개 처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혜정교도 잘 모르지만 탐관오리를 공개처형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뿐인가.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옛 다리도 만들어졌는데, 일부 다리의 위치가 옛날과 다르다는 점을 이 책은 지적한다. 심지어 다리 모양도 옛 것이 아니라고 한다. 청계천 물의 양을 쟀던 수표교가 대표적이다. 진품 다리는 청계천 복개 공사를 할 당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현재 청계천에 있는 다리는 ‘가짜’인 셈이다. 위치도 옛날의 그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서울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서울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쉽게.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준이다. 또 옛날 지도와 현재 사진을 실어두어 독자가 과거와 현재의 서울을 비교하기 쉽게 해두었다. 이 책은 서울에 대해 최소한 알아야할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사족을 달자. 지금의 그린벨트처럼 조선시대에는 금산(禁山)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산의 돌과 나무를 훼손하지 못하기 위함이다. 몰래 집을 짓거나 무덤을 만들거나 나무를 베면 벌을 내렸다고 한다. 특히 한양과 궁궐의 입지 기준점인 북악산 일대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삼기도 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자연보호보다 개발을 앞세운 행정은 과거 조상에 대한, 현재 국민에 대한 도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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