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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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책이다.
책 크기가 작은 <걷기 예찬>은 3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용은 알차다.
건강을 위해 걸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다.
걷지 않으면 성인병에 잘 걸린다는 협박도 없다.
다만, 걷기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걷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걷기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걷게 하는, 그런 책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제대로 된 걷기를 설명하면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예를 든다.
그는 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가 본 달의 분위기와 지구의 푸른 빛은 지구인도 TV를 통해 보았다.
그는 달의 흙 냄새를 맡았 보았을까? 아니면 발바닥으로 달 흙의 감촉을 느꼈을까?
그저 달에 발자국만 남기고 돌아왔다.
맨발 자국도 아닌 신발자국일 뿐이다.
닐 암스트롱은 달을 느끼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제대로 된 걷기는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이 책에서 강조한다.

 

“닐 암스트롱은 그의 모든 신체적 기능들을 보조하여 자신을 외부세계로부터 보호해주는 진기한 기계들이 가득히 부착된 갑옷이 몸에 꼭 끼여 갑갑하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다급한 용변 같은 것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암스트롱은 자신이 달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는 것이 무엇인지 좀 뒤늦게 자문해본다. (중략) 그는 우주복을 벗어버리고 고요의 바다에 몸을 던져 뒹굴고 싶고 달의 모래를 한 움큼 집어가지고 뿌리면서 바람이 부는지 어떤지 알아보고 싶고 맨발로 달리면서 발바닥에 땅의 감촉을 느끼고 싶다.”

 

걷는 데는 장소도 구애받지 않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사례로 든다.
감옥에 갇힌 죄수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만큼 발자국이 낸 길이 깊게 파여 가는 것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감옥에 갇힌 수인들이 골똘하게 계산을 해가면서 감방 안을 끝없이 거닐고 있다. 자신들의 보폭을 측정해보고 나서 그들은 상상 속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걸어나간 코스의 지도를 그려본다. 오늘 그들은 여섯 시간을 걸었으니 30여 킬로미터를 여행한 셈이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루아르강을 따라 르망에서 루에로, 투르에서 소뮈르로, 혹은 피렌체에서 피에졸레 언덕으로 올래 걸어갔던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감방을 벗어나지 않은 채 세계일주를 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일 걸릴 것인가?”

 

아스팔트 길과 맨땅을 걷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무한히 넓히기 위해서도 길이 필요하다. 아스팔트에는 역사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심지어 그 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해도 자동차들은 그곳에 아무런 기억의 자취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자동차는 장소와 역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풍경을 칼처럼 자리고 지나간다. 자동차 운전자는 망각의 인간이다. 풍경이 차의 앞 유리창 너머 멀리서 휙휙 지나갈 뿐 아무런 길에 대한 감각적 마취 혹은 최면상태에 빠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반면에 걷는 사람은 전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몸을 맡긴 채 더듬어가는 행로와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가운데 매순간 발밑에 밟히는 땅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거쳐 가는 길 위의 숱한 사건들을 골고루 기억한다.”

 

저자는 걷기의 장점을 장황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걷기를 주제로 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결국 ‘걷기 예찬’이 된다.
걷기를 싫어하거나 걸을까 말까 망설인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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