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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최근 해외 출장길에 가져갔던 몇 권의 책들 중 한 권이 <여행할 권리>이다.
이 책은 아기자기한 여행기를 기대했던 독자에게 실망을 주기에 알맞다.
'여행'이라는 단어에 혹하면 십중팔구 실망한다.
그 흔한 사진도 거의 없고 글만 빼곡하다.
그렇지만 판에 박힌 듯한 여행관련 책에 싫증난 독자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책이다.
장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으로 유명세를 탄 저자 김연수는 국경과 여행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권에는 나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기재되어 있다. 이름과 국적과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
직장에서의 평판은 어떤지, 가족들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따위는 불필요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장래희망이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가격 등도 필요 없다.
출생증명서에 생물학적 사실관계를 밝히는 숫자만 기재돼 있는 것처럼 여권에도 오직 생물학적인 '나'에 대해서만 적혀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최소한의 나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우화처럼 느껴진다.
거기에는 치명적인 진실이 있다.
공항을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는 그저 여권에 적혀 있는 생물학적인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가 어디에 도착하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란 존재는 이름과 국적과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것들, 그러니까 사회적인 '나'는 등 뒤에서 닫히는 출국장의 문 그 너머에 남겨져 있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은 산문집이다.
여행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고 있다.
저자의 글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약간 실망스러울 수 있다.
사실 저자가 토해낸 결과물을 독자는 일방적으로 강요받게 된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이 강한 책이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숨을 거둔 이상(李箱).
천재 문학가 이상이 왜 일본까지 갔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궁금함을 느낀 저자는 일본 여행을 시작하는 장면이 이 책에 나온다.
일본에서 이상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 이상의 심정을 남아있는 자료 등을 분석해서 직간접적으로 느껴보는 부분도 있다.
이런 방법도 여행의 한 단면이라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또 저자는 여행의 의미와 방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평점 A-